(조선일보 2018.07.11 박돈규 기자)
식물로 건물 덮는 '수직 정원' 창시
"폭포나 절벽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식물이 많아요. 동물은 환경이 마음에 안 들면 이동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달라요. 그 자리에 남아 적응하는 방법을 택하죠. 형태를 바꾸거나 내부에 생화학적 요소를 만들어냅니다.
생존을 위해 답을 찾아내는 모습에 매료됐어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소속 패트릭 블랑(65)은 '수직 정원(vertical garden)'의 창시자다.
도시 건물의 외벽을 식물로 뒤덮어온 식물학자다. 지난달 16일 부산 을숙도공원에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아래 사진>도
그의 손을 거쳤다. 지상 4층의 미술관 사방 콘크리트 외벽에 풀꽃 178종이 싹을 틔우고 자란다.
서울에서 만난 블랑은 "수직 정원은 '건축물의 두 번째 피부'"라고 말했다.
‘수직 정원’을 개발한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은 머리부터 상의, 손톱까지 온통 그린(초록색)이었다.
그는“식물로 건물 외벽을 덮는 작업은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부산현대미술관은 건물이 흉해서 식물로 덮는 편이 나았어요. 먼저 식생(植生) 연구가 필요해요.
지난해 10월 부산에 간 날 하필 태풍이 닥쳤어요. 고집 부려 간 이기대공원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해국(海菊)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옆에선 큰 파도를 일으키며 바다가 포효하고 있었죠.
범어사에서도 다양한 야생초와 꽃을 봤어요. 부산에서 본 식물들을 부산현대미술관 외벽에 설치했습니다.
단일종으로는 해국이 가장 많아요."
블랑은 1994년 한 축제에서 수직 정원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펠트 천을 씌워 식물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 '뮈제 뒤 케 브랑리'를 비롯해 그가 세계 200여곳에 만든 수직 정원은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열두 살 때 물고기 관찰을 즐겼어요.
과학 잡지를 읽다가 수생 식물이 물고기가 잘 자라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항의 물을 더럽히는 요소들은 반대로 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셈이죠.
동식물의 동거(同居)를 이해하면서 식물로 관심이 옮겨갔어요."
/부산현대미술관
숲의 최하단부에서 햇볕을 2%도 못 받는 식물들의 생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식물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요. 옷, 약품, 먹거리, 건축…. '바보짓'을 해 지구를 오염시키곤 치유하는 것도
부탁하고 있습니다."
수직 정원은 '자연을 도시로 되돌아오게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건축가나 조경업자와는 접근법이 다르다.
그는 "식물이 잘 적응하며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도시에 만드는 게 내 작업"이라며
"건물 장식이 아니라 식물이 행복하고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놀라움을 주는 '식물성 절벽'"이라고 설명했다.
햇볕 노출과 비, 바람, 계절의 온도 차를 다 감안해 식물을 배치한다고 했다.
한국에 수직 정원을 만든 것은 15년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택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당시 서울 신라호텔에 묵으며 밤에는 동대문에 내려가곤 했는데 좀 어수선했지만 그때가 더 좋았다"며
"철골과 광물로 지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서울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에 수생 식물을 파는 곳이 아직 있어 두 종류를 구입했다. 파리에 있는 내 어항에 넣을 것"이라고도 했다.
수직 정원에 벌레가 생길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블랑은"벌레도 생태계의 일부이고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수직 정원은 너덧 시간마다 물을 주는데,
고인 물이 아니기 때문에 모기도 없다. 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씻거나 꽃을 따먹는다"고 말했다.
"수직 정원은 그 지역 식물로 만든 '살아 있는 서명'"이라며 "그것이 주변에 자생한다는 사실,
식물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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