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7.24 김광일 논설위원)
오래전, 퇴임을 두어 달 앞둔 최인훈 서울예대 교수를 찾아갔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를 2층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는 쏟아져 들어온 봄 햇살을 발로 툭툭 차듯 걸었다. 가볍고 여유로웠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회색 머리칼이 생각난다.
그가 권했던 녹차와 케이크의 달콤함이 혀끝에 아련하다.
그는 고별 강연에서 "예술이란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돌격 5분 전에 휴식을 취하며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4·19가 있던 해 가을 세상은 한 치 앞이 어지러웠다.
서울대 법대 자퇴생 스물다섯 최인훈은 600장 분량 '광장' 원고를 한 월간지에 넘겼다. 원고를 읽은 편집장은 고민에 빠졌다.
'이념의 선택'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은 뜨거운 감자였다. 편집장 신동문은 발행인 몰래 원고 뭉치를 들고 인쇄소로 갔다.
밤을 새운 조판은 새벽녘에 끝났다. '광장'은 그해 '새벽'지(誌) 11월호에 실리게 된다.
▶"최인훈은 한국 문학과 정치사를 하나로 꿰어놓은 분"이라고 평론가 정과리는 말했다.
"이광수는 근대문학을 열었고, 최인훈은 현대문학의 출발점을 제시했다"고 했다.
최인훈은 계몽과 반공에 갇혀 있던 1960년대 인식의 바다에 단독자·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화두를 던졌다.
누구는 최인훈의 '광장'에서 중립국을 떠올린다.
이데올로기에 압착된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에 다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도피한 것인가, 아니면 건강한 시민의 광장을 꿈꾼 것인가.
▶제자들은 스승 최인훈이 노년에도 건강했다고 말했다. 술은 아예 입에 안 댔고, 담배도 진즉 끊었다.
작년에 서울대 법대 명예 졸업장을 받을 때도 몰랐다. 올봄 정기검진에서 온몸에 퍼진 병을 알게 됐다.
그는 침상에 지인들을 불러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미·북 회담이 열리던 날은 흥분한 모습이었다.
통증은 깊었으나 제자들에게 21세기를 내다보는 얘기를 했다. 목소리가 낮고 발음이 먹혔다.
▶6·25 때 소년 최인훈은 폭격을 피해 방공호로 달리다 우연히 어떤 여인 품에 부딪히는데, 그 뜨겁던 열기의 기억이
'어질머리'가 되어 문학을 관통했다. 평론가 김현은 최인훈을 "웃지 않는 작가"라고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진지했다.
"고독의 심연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고 제자 이나미는 말했다. 그는 강의 때 '암중모색'이란 말을 자주 했다.
변화하는 세계를 늘 성찰해야 한다는 작가의 자세였다.
안개가 짙을수록 빛을 내는 등대처럼 최인훈 문학이 살아 있길 바란다.
최인훈[崔仁勳 1936.04.13]? 1936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광장>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주로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표현함과 동시에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실존적 의미를 탐구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주요 작품에는 《회색인》,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인훈 [崔仁勳]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 11. 5., (주)신원문화사) |
광장. 구운몽(九雲夢)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9/ 426p/ 813.6-ㅊ622관=2/ [강서]문학서고 813.6-ㅊ622광7/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 |
금오신화(金鰲新話) 韓國戰爭文學全集. 제3권 : 金鰲神話 外 16편 短篇小說 한국문인협회 편;최인훈/ 이문출판사/ 1969/ 810.8-ㅎ257-3/ [남산]서고(문학실)-직원문의 |
서유기(西遊記)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2008/ 813.6-ㅊ622세/ [정독]어문학족보실(2동1층) /813.6-ㅊ622서/ [강서]문학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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