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03. 03:20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2일 부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종전 선언은 너무 빨리 하면 나중에 협상이 실패했을 때 김정은이 혜택을 본다"며 "한번 선언하면 (새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조기에 종전 선언이 되도록 관련국과 협의 중"이라며 '중국 포함 4자 종전 선언'을 언급하는 등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주재국 정부가 전력투구하는 일에 대해 대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미국이 종전 선언을 어떻게 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해리스 대사는 "종전 선언을 하려면 비핵화를 위한 상당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면서 "핵 시설 리스트를 제출하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없는 정치 쇼의 종전 선언은 안 된다'는 것이다. 북의 핵·미사일 실험장 폐쇄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현장에 가봤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중대한 조치"라는 것과 대조된다.
북이 정상회담만 하고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건 북핵 문제에 기초 지식만 있어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6·25 미군 전사자 55명의 유해가 하와이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 곧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이는 비핵화와 직접 관련 없는 사안으로 트럼프가 선거용으로 과대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북은 이미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수차례에 걸쳐 미군 436명의 유해를 인도했다. 그 기간에 북은 핵을 개발하고 있었다.
미국 조야는 대북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공화·민주당을 떠나 연일 "북에 최대 압박을 가해야 한다" "비핵화 전까지 어떤 제재 완화도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이런 실망감이 이젠 한국까지 번지고 있다. 상원 동아태소위원장은 "한국의 개성공단 재가동은 제재 위반이자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명백한 경고다. 다른 상원의원은 한국에 북한산 석탄이 수입·유통된 것을 "실망스럽다"고 했다. 한국 기업을 미국이 직접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언급한 의원도 있었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대북 제재 및 집행 조치 주의보' 가이드북을 발표하면서 중국·러시아·프랑스·스페인어와 함께 한국어 번역본을 낸 사실도 확인됐다. 2월에 발표한 '주의보'는 중국어로만 번역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을 제재 위반 잠재국으로 본다는 얘기다. 모두가 전례 없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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