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7.30 이춘근 한국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최근 열린 미·러 정상회담 직후 美 언론·정계, 트럼프 비난 쏟아내
러시아 국방비는 미국 10% 불과… '제2의 冷戰' 우려는 근거 없어
이춘근 한국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지난 7월 16일 헬싱키에서 열린 트럼프·푸틴의 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미국의 주류 언론과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소속의 정치인들마저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방문을 격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다. 이들의 비난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트럼프는 전통적인 친구인 프랑스와 독일 및 나토 국가들에 대해서는 적국처럼 거칠게 대했고,
적국인 러시아에 대해서는 비굴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은 "러시아는 결코 미국의 동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
훈계하듯 경고했고, 역시 공화당 소속 최고 중진인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러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보인
말과 행동은 "미국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불명예였다"고 단언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국 국장을 역임한 존 브레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의 주머니 속에서 놀아났으며
그의 행동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못해 반역적인 짓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다.
우리나라 많은 언론도 이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형편없는 행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의 주류 언론과 주류 정치인들의 비난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트럼프라는 인물의 존재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디프 스테이트(Deep State)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기성 권력'은 트럼프라는 인물의 존재 자체를 싫어한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꾸로 전통적인 우방국들에 우호적으로 대해주고, 러시아와는 한판 뜰 기세를 보이고
돌아왔다면 그를 "세상이 변했다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인간"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유럽 및 러시아 정상과의 회담에서 보여준 모습은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과 언급들은 미국 외교정책이 나아갈 길에 대한 미국 최고 지성들의 충고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정책에 대해서 그러하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국력의 제반 측면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 뒤처지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소련의 GDP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여름, 미국의 셰일 석유생산이 폭발적으로 증대된 이후 러시아의 GDP는 2~3년 만에 약 40% 곤두박질치듯
감소했다. 미국의 석유 증산 때문에 국제 유가가 반 토막이 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
GDP 감소와 더불어 인구의 평균수명조차 감소 중이다. 2017년 러시아의 GDP는 국제유가의 상승에 힘입어 3년 만에
반등해 1조5274억6900만달러가 되었고 대한민국에 이어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보다 GDP 규모가 작고,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분의 1에 불과한 러시아가 미국과 냉전을 벌일 수 있는
나라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 러시아의 GDP는 미국의 7.9%, 국방비는 간신히 미국의 10%가 좀 넘는
나라다. 러시아는 좋은 무기가 많은 나라 아니냐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무기라도 돈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답이다.
냉전이란 세계 전체를 상대해서 싸울 수 있는 초강대국 두 나라가 존재했을 때 나타났던 특수 상황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으르렁거릴 뿐 진짜 싸움은 할 수 없었다. 다 죽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폴란드에 미군이 영구 주둔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라다.
이는 옛 소련 시절이었다면 3차 세계대전을 야기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런 러시아의 등을 조금 두드려 주었다고 펄펄 뛰며,
러시아 위협론을 외쳐대는 미국의 기성 권력이 오히려 이상하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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