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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치영]또다시 이념적 편가르기인가

바람아님 2018. 7. 29. 09:03
동아일보 2018.07.28. 03:01


신치영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폭염으로 정부가 원전 가동을 다시 늘려 전력수요를 충당하고 있다는 지적을 ‘왜곡’이라고 규정한 건 패착이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원전 가동 상황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주장도 있다”며 “산업부가 전체적인 전력 수급 계획과 전망, 대책에 대해서 소상히 국민들께 밝혀 드리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언론 보도와 야권의 주장을 두고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보는 20일자 A3면에 “여름철 전력 사용량이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정부는 원전 가동률을 높여 급증한 전력수요를 감당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탈원전 정책이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후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 비슷한 보도가 이어졌다. ‘현재 정비 중인 원전을 최대한 빨리 다시 가동하고, 일부 원전의 정비 시기를 늦추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의 22일 발표는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정부는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해 원전 가동을 늘리는 것은 이번 폭염 때문이 아니라 이미 4월에 결정된 것이고, 탈원전 정책은 당장 원전을 줄이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굳이 왜곡이라는 표현까지 써야 했는지 의문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원전 가동을 늘리기로 한 결정이 4월에 이뤄졌는지, 이번에 결정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건 전력수요가 늘면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둘째, 2031년이 돼야 원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탈원전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계획된 신규 원전 건설을 취소했고 원전 안전성을 중시해 원전 정비 기간을 대폭 늘렸다. 80% 안팎이었던 원전 가동률은 현 정부 들어 54.8%까지 떨어졌다가 지난달엔 그나마 67.8%로 높아졌다.


예기치 못한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원전을 더 돌려야 하는 상황이니 탈원전 정책의 타당성을 다시 짚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왜곡’으로 몰아붙이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주목하는 더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상대편 비판에 무조건 귀를 닫고 있다는 징후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며칠 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에 대해 “서민경제에 돈이 돌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겠다”며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추가 인상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정부를 탓하지 말고 경제구조를 탓하라니, 정부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할 말인가.


그런가 하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고용이 감소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최근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조선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사실을 주무부처 장관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념적 편가르기를 하고 ‘우리 말이 무조건 맞고 너희가 틀렸다’고 우기기. 진보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역대 거의 모든 정권이 안고 있던 고약한 고질병을 문재인 정부도 물려받지 않았는지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실수하지 않는 정권이 어디 있는가. 실수를 바로잡으며 때로는 완급을 조절하고 때로는 돌아가다 보면 성공한 정권으로 기억되는 법이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