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29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2005년 2월 7일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실장과 김시환 연구원 등은 경남 창녕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739m의 화왕산 정상에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발굴을 시작했다.
3년 전 찾아낸 연못 내부를 조사해 유적의 성격을 해명해볼 참이었다.
목각 여인상, 화왕산성, 국립김해박물관.
정방형 연못의 호안 석축은 한 변 길이 14m, 높이 2m 규모였고
그 속엔 진흙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연못은 통상 오랫동안
사용되므로 어떤 유물이 어느 층위에서 출토되는지를 잘
살펴야 했다. 김 연구원 등은 켜켜이 퇴적된 흙을 조금씩
제거하며 조사에 임했다.
오래지 않아 백자 조각, 상평통보 등의 모습이 보였고 임진왜란 때
위력을 떨쳤다고 전하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출토되면서
이 연못이 조선시대에 사용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신라 토기 조각도 여러 점 섞여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기가 많아져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날 연못 안에 쪼그려 앉아 꽃삽으로 진흙을 제거하던
조사원들은 나무토막 하나를 발견했다. 길이가 49.1㎝였고
한쪽이 둥글게 가공되어 있었다. 물로 깨끗이 닦아내니 마치
금방 만든 것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한 목각 여인상이었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놀라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면엔 거친 붓 터치로 그려진 반라(半裸)의 여인상이,
다른 면에는 세로로 빼곡히 내려쓴 묵서가 있었다.
모두 판독하긴 어려웠으나 용왕(龍王)이란 두 글자가 선명했다.
게다가 정수리, 목, 몸통의 급소 6곳에 홈을 낸 다음 금속제 못을
박았던 흔적들이 확인됐다. 주변에선 9세기 무렵의 신라 유물들이
쏟아졌다. 마구, 차를 갈던 다연, 통나무를 깎아 만든 북[鼓] 몸체,
쇠솥 등이 포함돼 있었다.
발굴 성과가 공개되자 학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화왕산성에서 거행된 제사를 기우제로 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뤘지만 목각 여인상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용왕에게 바친 인신희생의 대용품으로 보기도 하고,
특정 여성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분신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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