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24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토기호, 안인리 2호 집터, 강릉원주대박물관.
1989년 강원도 명주군 안인리 일대에 영동화력발전소 회(灰) 처리장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학계에선 인접한 하시동 신라 고분군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우려했다.
현장을 찾은 강릉대박물관(현 강릉원주대 박물관) 지현병 학예사가 공사 부지에서
여러 점의 토기 조각을 발견하면서 관심은 안인리 쪽으로 옮겨졌다.
강릉대·강원대·관동대 등 3개 대학 박물관이 연합팀을 구성해 조사를 시작한 것은
그해 12월 21일이었다. 강풍과 폭설 속에서 조사를 이어가던 지 학예사와 고동순
조교는 모래흙 아래에 묻혀 있던 집터 윤곽을 확인했다. 남북으로 배치된 크고 작은 집터 2기가 중복된 것처럼 보였다.
북쪽이 25.9㎡로 10.52㎡인 남쪽보다 넓었다.
둘 사이의 선후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좁은 도랑을 파기로 했다.
곧 점토를 다져 만든 작은 집터의 바닥이 드러났고 그것은 비스듬한 경사로를 따라 더 낮은 곳에 위치한 큰 집터의
바닥으로 이어졌다. 원래 2기가 아니라 하나였던 것이다. 남쪽에 작은 방, 북쪽에 큰 방을 갖춘 구조였다.
불탄 집터 안에서는 갑작스러운 화재에 살림살이를 그대로 놓아둔 채 피신한 듯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입구 쪽 작은 방에서는 숫돌과 철기가, 큰 방에서는 저장 및 취사용 토기류가 다량 출토됐다.
2호 집터에서는 서북한 지역 토기가 출토되어 눈길을 끌었다.
조사원들은 처음 발굴된 특이한 이 집터에 '여(呂)자형 주거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출입 시설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그것은 '철(凸)자형 주거지'라 부르기로 했다.
발굴은 1991년까지 이어졌고 발굴된 집터는 40기로 늘었다.
동해안에서 처음 발굴된 철기시대 마을로 기록됐다.
이 유적 발굴을 신호탄으로 '여자형 집터'는 강원 영서뿐만 아니라 경기, 충청 일부 지역에서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특이한 구조를 갖춘 집터에 살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학계에선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다.
마한, 백제, 그리고 예(濊)의 주민들로 보는 견해가 중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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