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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96] Read this to me

바람아님 2018. 11. 24. 19:32

(조선일보 2018.11.24 이미도 외화 번역가)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촛불과 술과 꽃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작품입니다.

제목은 '봄의 정원으로 오라'. 많은 작품에서 그의 '정원'은 신(神)과의 합일(合一), 연인과의 합일을 상징합니다.

'노트북(The Notebook·사진)'의 소재는 후자입니다.


영화 '노트북'


주인공은 황혼의 남녀. 남자는 오늘도 요양병원 정원에서 공책을 펴 소리 내 읽습니다.

그 내용은 영화의 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청년 노아와 재력가 딸 앨리의 운명적 러브스토리입니다.

듣고 있던 여자가 어느 대목에선가 의아해하며 반응합니다.

"들어본 이야기 같아요." 하지만 그뿐, 그녀 표정은 다시 남자에게 무심해집니다.

그녀는 치매를 앓는 앨리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랑은 일생의 여정(旅程)이다. 중요한 건 여정을 시작할 때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여정의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사랑을 키우느냐다(Love is a journey of lifetime.

 It is not how much love we have in the beginning, but how much love we build until the end).'


공책을 읽어주는 남자는 노아입니다. 그는 여정의 끝 단계를 예감합니다.

그럼에도 아내를 향한 사랑은 작아지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기에 치매가 사랑만은 못 빼앗아갈 거라는 희망….

게다가 그에겐 마법의 주문(呪文)이 있습니다. 아내가 둘의 삶을 기록한 공책 속 글입니다.

'이걸 읽어줘. 그럼 당신에게 돌아올게(Read this to me, and I'll come back to you).'


대단원 무대는 촛불과 포도주와 꽃병이 차려진 요양병원의 방.

공책 속 이야기에서 연인이 극적으로 재회하는 대목을 듣던 앨리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녀가 그들의 '정원'에 돌아오는 걸까요.

촛불과 술과 꽃의 존재를 다 잊게 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