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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왜 名畵인가] [6] 이봉상의 '산'

바람아님 2013. 12. 3. 08:53

(출처-조선일보 2013.12.03  이주헌·미술평론가)


 흔들리지 않아 아름답다


이봉상(李鳳商·1916~1970)은 산 같은 사람이다. 그가 산을 그렸으니 자화상을 그린 셈이다. 산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제자리에 우뚝 서 있다. 산은 말이 없다. 이봉상도 그러했다. 그는 염량세태로부터 뚝 떨어져 산처럼 묵직한 조형 세계를 펼쳤다.
어느 해 국전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심사 하루 만에 목이 다 쉬었다 한다. 심사위원 중에 정실(情實)로 지인들의 졸작을 입상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에 항의하느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와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진정 산 같은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고 산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흔들림이 없어 미덥기 때문이다. 그 '부동의 미학'은 격변의 세월을 살아온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아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가 무겁고 진중한 형식만을 취한 것은 아니다. 그의 색채가 보여주는 화사함은 그의 구성이 보여주는 견고함과 묘한 긴장 관계를 이룬다. 화려함과 묵직함의 공존, 그것은 어찌 보면 모순적이지만 실제로 산이 그러하다. 계절 따라 산만큼 화려하게 거듭나는 게 세상 어디에 있으랴.

숲이 저리도 아름답게 물드는 것은 산이 숲을 든든히 품어주기 때문이다. 흔들림이 없어야 풍성하게 품을 수 있다. 아비가 자식을 보듬듯, 산은 그렇게 숲을 보듬는다. 이봉상이 꿈꾼 아름다움은 그런 아름다움이다.


이봉상-산, 1958년 작

이봉상의 1958년 작 ‘산’. 가로 106㎝, 세로 105㎝.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