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인원의 사진산책] 동영상의 시대, 사진가들은 무엇을 찍는가

바람아님 2019. 1. 11. 08:43

조선일보 2019.01.10. 03:11

 

텅 빈 사무실과 은행 휴게실도 응접실 가구가 다른 아파트도 寫眞家가 찍는 순간 '사진'이 된다
눈앞의 풍경을 따라다니지 않고 기획력으로 세상을 '해석'한 덕분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요즘 열리고 있는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전(展)은 여러모로 볼 게 많은 사진 전시회다. 전시엔 세계 32개국 사진가 135명의 사진 300여 장이 걸렸다. 다음 달 말까지 이곳 전시가 끝나면 2021년까지 베이징, 멜버른, 마르세유 등 해외 10여 개 미술관 순회 전시 계획이 잡혀 있다. 수준과 규모로 볼 때 역대 최대 규모의 사진전인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전과 비교되기도 한다.


사진들은 1990년대 초부터 25년간 기록된 지구촌 문명에 관해 수집, 분류되었다. 도시와 문명에 관한 모습들을 '벌집' '따로 또 같이' '흐름' '설득' 등 8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전시장을 가보면 지구처럼 둥근 원형 전시실 안에 섹션별로 주제가 이어져 연결된다.

사진들이 너무 많아 전시장을 여러 차례 가봤다. 천천히 다시 보면서 질문들이 샘솟았다. 사진가들은 촬영 대상을 어떻게 골랐을까? 얼핏 평범한 모습들을 그들은 어떻게 다르게 보여줬을까?

누구든지 '무엇을 찍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우선 고민한다. 동시대 문명을 기록한 사진가들은 어떤 대상을 골랐을까? 전시된 일부 사진을 보자.


사진가 안드레아 A. 올리베이라는 텅 빈 사무실이나 로비 같은 장소를 집중 촬영했다. 헤지펀드 회사 사무실, 회계사의 책상, 광고 회사 로비, 은행 휴게실 등이다. 그곳에 누가 오고 가는지, 사람들을 설득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공간에 주목했다.

로저 에베르하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부터 서울까지 세계 16개 주요 도시의 호텔 밖 풍경과 호텔 안을 나란히 배열했다. 그런데 모두 다른 창 밖 풍경과 달리 더블베드 옆에 스탠드가 있는 호텔 방 내부 모습은 어디든 신기하리만큼 똑같다. 반대로 한국 사진가 정연두가 촬영한 서울의 한 아파트는 반대다. 비슷한 공간의 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응접실 가구가 각양각색으로 다른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사진작가 뤄성원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동물원에서 흰곰을 구경하는 관람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을 상품화한 인간들의 이기심을 꼬집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중국 사진가 왕칭송은 환자복을 입고 수액(輸液)을 꼽은 사람들이 좁은 사무실에서 건축 모형을 놓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쟁과 속도를 강요하며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우화적(寓話的)으로 연출된 사진으로 풍자한 것이다.

위 사진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주제나 문제를 찾은 다음 피사체를 선택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나 풍경을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간 절대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다. 카메라로 우연을 포착하러 헤매기보다는 '기획'력과 세상을 사진으로 '해석'하는 사진가의 '관점'이 핵심인 것이다.


아울러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사진의 소재(素材) 선정만큼이나 어렵고 남다른 도전이 필요하다. 다른 예를 보자.

거대한 TV 화면 너머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슬픈 얼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작가 마크 파워는 바티칸에서 생중계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든 바르샤바 시민들의 모습을 밑으로 깔고, 사진의 프레임 4분의 3을 어지럽게 전선이 연결된 모니터 뒷면으로 가득 채웠다. 기계 또는 미디어가 설득·통제하는 군중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장면을 모니터로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 프레임의 대부분을 방송 모니터 뒷면으로 채워 미디어에 의존하는 현대 사회를 풍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검은 액자에 까만 바탕으로 장난감처럼 귀엽게 생긴 물건들을 하나씩 액자에 담은 라파엘 달라포르타의 사진들은 각국의 군사용 대인(對人)지뢰들이다. 비슷한 정물 사진의 형식으로 네모난 사과, 색을 입힌 열대어, 깨지지 않는 계란처럼 신기한 생물들은 알고 보니 인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유전자조작(GM)으로 태어난 생물들이다. 빈 배경 위에 생물을 사진 프레임 가운데 작게 하나만 배치해 시각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간단한 설명으로 강한 환경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중국 작가 뤄성원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동물원에서 창문에 붙어 있는 흰곰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을 다루면서 자연을 상품화한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고 있다. 보통 사진이라면 볼거리인 곰에게 집중할 텐데, 그의 사진은 애처롭게 매달린 곰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부각하는 게 다르다.

요란한 동영상과 화려한 사진만 찾는 이 시대, 스틸 사진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문명전'에 걸린 사진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것만 따라다니지 말고 세상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관찰하라고. '좋아요'만 많이 부르는 사진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