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한 세기 민족과 운명 함께 한 한반도 고유종 미선나무

바람아님 2019. 3. 3. 08:41
동아사이언스 2019.03.02. 13:10
미선나무 꽃의 모습. 한국 고유 식물종인 미선나무는 3월에서 4월 사이 개나리와 비슷한 모양의 꽃망울을 터트린다.
국립수목원 제공

한반도 특산식물인 미선나무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주목을 받고 있다. 미선나무는 학계에 처음 보고된지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 박사가 1917년 충북 진천에서 처음 발견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19년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 박사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되면서 한반도를 대표하는 특산식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보고된 학명은 ‘Abeliophyllum disdichum Nakai’다. 나카이 박사의 이름이 학명에 들어갔다. 3·1운동이 일어난 해 한쪽에선 한국 고유 식물종의 이름마저 약탈 당한 셈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 중 개나리를 비롯한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다.


학계에 보고될 당시 나카이 박사는 미선나무를 일본 이름인 ‘부채나무’로 소개했다. 한국 식물학자들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들면서 이름을 바꾸려 했다. 나무의 열매가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넓적하고 둥근 한국 전통 부채인 ‘미선(美扇)’을 닮았다 미선나무로 기록하려 한 것이다. 일제의 제재에 한국 식물학자들은 “농촌에선 일본어를 잘 모르므로 교육을 위해 일본명을 번역하는 것”이라고 둘러댄 결과 현재와 같은 이름이 남았다고 한다.

미선나무 열매의 모습. 열매의 형태가 한국 전통 부채인 ′미선′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미선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한국의 역사를 함께한 미선나무가 학계 보고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는 자리가 열렸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미선나무 100년을 통해 본 우리나라 특산식물’을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 전에는 김재현 산림청장과 국회 연구모임 '나무심는 사람들'이 국회도서관 앞에서 미선나무 묘목을 나눠주는 행사도 가졌다.


한반도 특산식물은 총 360종이다. 특산식물은 특정한 지리적 지역에 제한돼 나타나는 식물을 말한다. 한반도에서 자라는 식물종은 약 5000종 정도인데 오직 한반도에서만 자라나는 식물이 360종이나 있는 셈이다. 개나리 같은 흔한 식물도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대표적 특산식물이다. 미선나무도 한반도 대표 특산식물로 충북 괴산에 3곳, 영동에 1곳, 전북 부안에 1곳 등 5곳의 자생지가 남아있다. 북한 평양에도 미선나무 자생지 1곳이 있다.


특산식물은 최근에야 정리가 마무리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한반도 특산식물을 각각 정리해 오다, 자생식물에 대한 주권확보를 위해 특산식물의 국가 차원 자료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자 한국식물분류학회가 국립수목원과 함께 목록 통일에 나서 2017년 360종으로 분류했다.


특산식물은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자라다 보니 멸종 위기종인 경우가 많다. 충북 괴산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미선나무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위기종으로 등록돼 있다. IUCN 적색목록은 전 세계 차원에서 지구 동식물종의 보존상태를 9등급으로 목록화한 것이다. 심각한 위기종(CR), 멸종 위기종(EN), 취약종(VU)은 보존 주의가 필요한 등급이다. 한국 특산식물은 43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등재돼 있다. 이중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한 5종은 CR, 15종은 EN, 5종은 VU로 분류돼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야생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적색목록을 지정해 관리한다. 한국은 법률로 희귀식물을 ‘개체수와 자생지가 감소하고 있는 식물’로 정의하고 571종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385종이 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 산림청은 현재 희귀식물과 특산식물 간 겹치는 86종을 보전 1순위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북한도 2016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국가적색목록을 만들어 발표했다. 377종을 평가했는데 212종이 위험범주에 속해 있다.

IUCN은 미선나무를 적색목록 멸종 위기종(EN)으로 분류했다. IUCN 적색목록 홈페이지 캡처

미선나무를 비롯한 한국 특산식물에 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다. 김주환 가천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미선나무를 유전학적으로 연구한 연구결과를 심포지엄에서 일부 공개했다. 김 교수는 “나카이 박사가 향선나무와 비슷하다는 설명을 미선나무를 학계에 보고할 때 담아 논란이 있었는데 연구결과 미선나무의 자매종은 향선나무가 아니라 개나리인 것으로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산식물 보급과 연구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 교수는 호주의 특산 소나무를 심은 맨리비치와 한국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비교한 것을 사례로 제시하며 “국회를 들어오는데 입구에 심겨 있는 식물도 외래종이였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제주 왕벚나무가 일본 왕벚나무종과 다른 별개의 종이라는 것을 밝힌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는 세계 처음으로 야생식물의 유전체를 완전해독한 연구로 주목받기도 했다.


특산식물은 활용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는 주장도 나왔다. 생물자원을 활용할 때의 국가 간 이익을 공유하는 지침을 담은 나고야 의정서가 2010년 채택되면서다.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해 특산식물을 많이 발굴할수록 국가적 이득으로 연결될 수 있다. 박재호 중원대 제약공학과 교수는 “가치부여를 식물학적으로도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가치를 부여해 미선나무의 의미를 보존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나고야 의정서 때문에 기업이 천연소재를 찾을 때 특산식물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산식물은 정원소재로도 가치가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정희 국립수목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산 관상식물은 추위에 강하고 꽃 색이 선명해 해외에서도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며 "특산식물은 지역의 대표성과 고유성을 가져 다양성을 추구하는 전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1934년 영국 큐 식물원에 종자가 보내지며 일찌기 해외로 반출된 미선나무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지에서 값비싼 관상수로 판매되고 있다.


김재현 산림청장은 “남북 교류에 중요한 매체가 될 수 있는 것도 미선나무라 생각한다”며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남북이 소중히 가꾸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선나무 군락은 한국 천연기념물 제147·220·221·364·370호이면서 북한 천연기념물 12호이기도 하다.

미선나무 묘목의 모습. 국립수목원 제공
김재현 산림청장이 행사 참가자들에게 미선나무 묘목을 나눠주고 있다. 국립수목원 제공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