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일상이 숨 쉬는' 광화문 광장 만들려면… 상점과 벤치, 나무 그늘

바람아님 2019. 3. 7. 18:03

(조선일보 2019.03.07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말고 로마의 나보나 광장 배워야
주변에 들어선 온갖 가게들 밤낮없이 사람들 맞아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서울시에서 광화문 광장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12차선 도로에서 서측에 있는 6개 차선을 없애고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광장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 위치도 옮긴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주로 정치적 용도로 사용되는 광장에서 시민에게 친근한 광장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차로를 축소하고 보행친화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세 가지 정도를 재고했으면 한다.


첫째, 왕복 6차선을 교보문고 앞쪽으로 몰아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3개 차선씩 2개로 나누어서 광화문 광장 좌우로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야 세종문화회관 뒤쪽부터 시작해서 종로구청까지의 블록을 하나로 연결하는 보행친화적 도시공간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3차선보다 넓은 길은 건너지 않는다.

4차선 정도가 되면 길 건너편 모습이 보이지 않고 무단횡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홍대 앞 상권은 홍대지하철역 입구부터 시작해서 합정역까지 이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상권의 도로는 단 하나의 4차선 도로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3차선 이하다.

덕분에 이 지역은 도로로 인해 블록이 나누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편하게 왕래를 한다.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좌우 각각 6차선으로 되어 있어서 광화문 광장으로 사람이 건너가지 않는 것이다.

이 도로의 폭을 3차선 이하로 줄여야 한다.

지금 서울시의 계획처럼 6차선 도로를 남겨놓으면 새로 조성된 광장은 좋겠지만 광장과 교보문고 블록 사이는 단절된다.

서울시는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을 벤치마킹해서 지금의 디자인을 제안했다.

그러나 내셔널 갤러리가 접하고 있는 트래펄가 광장과 세종문화회관이 접한 광화문 광장은 콘텍스트가 다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내셔널 갤러리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미술관인 반면,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이 있는 시간에만 찾는 건물이다.

광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람의 공급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공연장은 갤러리보다 불리하다.

광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주변에 가게가 많아야 한다.

시민의 광장을 만들려면 트래펄가 광장보다는 이탈리아 로마의 '나보나 광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

나보나 광장은 주변에 가게가 많아서 밤낮 할 것 없이 다양한 표정으로 사람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에서 도로에 접한 빌딩의 길이가 가장 긴 건물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교보빌딩, 세종문화회관, 미대사관, 정부종합청사, 한국역사박물관 모두 빌딩의 가로로 긴 변이 세종로에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 입구는 건물당 하나뿐이다. 미대사관과 정부종합청사는 일반시민이 출입하는 입구도 없다.

그러니 광화문 광장이 삭막한 것이다. 주변에 가게가 없으니 할 일이 없고 이벤트가 없다.

좌우대칭 공간이어서 시선 집중을 받지만 텅 비어 있는 공간만 남아 있다. 그래서 그곳이 정치적 시위로 채워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일상이 숨 쉬는 광화문 광장을 만들려면 주변 건물의 1층에 다양한 가게들이 밀집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야 한다.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벤치와 그늘을 드리울 나무도 필요하다.

앉을 의자도 가게도 나무 그늘도 없이 비어 있는 넓은 광장은 커봐야 정치 집회 장소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을 표출하는 광장보다는 갈등을 봉합하는 광장이 더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이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일상의 광장이 필요하다. 이것이 두 번째 이슈이다.


셋째로 동상 이전 문제다.

서울시는 현재 두 동상의 이전 문제가 반대 여론이 심하자 연말까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인물이다.

두 분 다 조선시대 사람이지만 그 위치에 있는 두 동상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미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새로운 광화문 계획안에는 동상을 옮기고 촛불을 상징하는 조명을 바닥 전체에 새겨놓았다.

멋진 광장 디자인이지만 두 동상을 옮기고 촛불만 뒤덮은 광장을 만들겠다는 것은 어느 역사보다도 2016년의 역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정치색을 빼겠다고 시작했는데 정작 가장 정치적인 광장을 만들려 하고 있다.

을지로에 냉면집 하나 없애는 데 신중한 서울시가 어찌 이렇게 쉽게 광화문 광장의 중요한 상징을 옮기려는지 모르겠다.

서울시가 새롭게 제안한 구상의 광화문 광장은 아직도 정치성이 과도하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진정으로 일상의 삶에서 사람들을 화합시킬 광장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