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6.28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evolution'이라는 영어를 진화(進化)라고 옮기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에서 이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그런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까닭이다.
메이지(明治) 때 일본은 이를 '진화'로 옮겼지만, 청말(淸末)의 중국은 '천연(天演)'이라고 적었다.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라는 책에 자신의 관점을 곁들여 '천연론(天演論)'으로 번역한
엄복(嚴復·1854~1921)이 주인공이다. 그는 생명체들의 경쟁을 물경(物競), 자연의 선택을 천택(天擇)으로 적었다.
그리고 다툼 끝에 살아남는 일을 최적자존(最適者存)으로 적었다. 생존경쟁(生存競爭), 자연도태(自然淘汰),
적자생존(適者生存) 등 일본이 옮겨 지금 우리가 쓰는 말들의 초기 중국어 번역이다.
서구의 문명을 보는 경이와 충격, 이어 우리도 각성하자는 차원의 사고가 배어 있는 역어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진화'에 비해 중국의 '천연'은 위기의식을 조금 더 짙게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진화'는 능동적인 사고를 담았다. 경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관념이며 전반적 서구화(西歐化)를 지향한다.
그에 비해 '천연'은 자연의 선택을 중시한다.
좀 더 수동적이며, 중국과 서양의 문명적 성과를 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엄복은 '천연론'에서 경쟁과 다툼을 통한 진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국민의 윤리의식을 일깨워 단합을 이룬다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천연론'은 현대 중국 지식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혁·개방을 추진했지만 민주와 자유 등 서구의 가치체계에는 아주 냉담한 현재 공산당의 지향도 공교롭게 그 틀이다.
그러나 evolution의 번역에서 '진화'가 '천연'을 도태시킨 지 오래다. 이 점은 지금의 중국에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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