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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한국은 이제 없다" 자금성 주변엔 한식당 전멸

바람아님 2019. 8. 8. 08:46

중앙일보 2019.08.07. 00:02

 

[차이나인사이트]
베이징 3순환로 內 한식당 전멸
서울 사대문 내 중국집 '0'인 셈
삼성과 현대차 광고판 전격 철거에
창안대로 LG 빌딩은 매물로 나와

15년 만에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해 보니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앞줄 오른쪽 넷째)이 지난 7월 18일 아시아 각국 대사들을 외교부로 초청해 교류 모임을 가졌다. 왕이 바로 왼쪽에 지재룡 북한 대사가 자리한 반면 장하성 대사는 맨 뒷줄에 위치해 대조를 이뤘다. [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1998년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했다가 2004년 귀국했다. 그리고 2019년 2월 다시 중국에 나왔다. 15년 만이다. 만나는 이마다 묻는다. 뭐가 가장 크게 달라졌냐고.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최근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감은 이제 중국에서 거의 사라졌구나.”


베이징에 오니 중국 지인이 점심 자리를 마련했다. 예의는 서로 오가야 하지 않나(禮尙往來). 얼마 후 내가 초청하기로 했다. 중국 지인은 한식을 희망했다. 내심 반가웠다. 중국 요리가 워낙 비싸 은근 걱정이었는데 한식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뜻밖의 문제에 부닥쳤다. 중국 지인의 사무실이 황제들이 살던 베이징의 중심 쯔진청(紫禁城)을 둥글게 싸고 도는 제2 순환도로(二環路) 옆에 위치해 점심 장소로 근처 한식당을 알아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베이징에는 마치 동심원처럼 중앙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순환도로가 여러개 있다. 문제는 전장 48㎞의 제3 순환도로 안에 번듯한 한식당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었다. 전멸이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중국집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제2 순환도로 안의 ‘수복성’은 물론 창안(長安)대로에 자리한 LG 빌딩 내 ‘애강산’도 문을 닫았다. CJ의 ‘비비고’ 체인점 또한 올해 봄 사업을 접었다. 난감했다. 겨우 제3 순환도로 바로 바깥의 ‘서라벌’ 한식집에서 중국 지인을 만났다.


드라마 ‘대장금’이 불러일으킨 중국 내 한식 열풍은 다 어디로 갔나. 90년대 초반 중국 요식업에 진출한 온대성 한식세계문화베이징협회 회장에게 물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를 둘러싼 갈등의 후유증을 첫 번째로 꼽았다. 사드 보복으로 한국행 관광이 막히자 중국인의 일본 여행이 늘었다. 그러면서 일식이 맛있고 자연 친화적이며 값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베이징의 입맛이 한식에서 일식으로 변한 것이다. 두 번째는 “베이징 내 한국인이 확 줄었다”는 점이다. 한때 제4, 5 순환도로 사이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望京)에 사는 우리 국민이 10만명을 헤아렸다. 지금은 2만명이나 될까. 한국인 상대 장사가 어렵게 된 것이다.


베이징의 한식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한·중 문화교류가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중국의 지식인 지셴린(季羨林)은 생전에 “중국인이 일본에서 한식을 먹는 것도 한·중 문화 교류”라 했다. 술과 차를 망라한 음식에 한 나라의 문화가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과의 사귐에 밥상만 한 게 없다는 건 주지하는 바다. 베이징 중심가에 한식당이 사라졌다는 건 한·중 교류의 주요 무대가 소멸된 것과 진배없다. 반면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게 일식당이다.


한국 기업의 존재감 약화도 뚜렷하다. 지난 6월 29일 심야에 베이징 창안대로의 버스 정류장 시설을 장식하던 삼성과 현대차 광고가 전격 철거된 게 대표적 예다. “베이징에 있는 한국인 치고 힘 안 드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게 요즘 베이징 한인 사회 유행어다. 단색의 외제 고급 승용차와는 달리 알록달록 색을 입은 채 영업용 택시로 쓰이는 쏘나타나 엘란트라 모습은 안쓰럽다. 과거 중국 비즈니스맨이 성공의 상징처럼 들고 있던 삼성 휴대폰은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 내 삼성 소식은 ‘조직 축소’가 주류를 이룬다. 2005년 4억 달러를 들여 창안대로에 세웠던 LG 쌍둥이 빌딩은 7월 초 매물로 나왔다. 중국은 한국 기업의 쇠퇴를 경쟁력 약화 탓으로 분석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드 보복은 아직도 진행형

중국 베이징 시 당국의 철거반원들이 지난 6월 29일 밤 창안대로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 시설을 철거했다. 이 때문에 정류장 시설을 장식하고 있던 삼성과 현대차 광고도 함께 철거됐다. 베이징 당국의 조치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이전에 취해진 것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사드 보복이 가져온 상처는 넓고도 깊으며 또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행 단체관광은 아직도 막혀 있다. 중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여행사가 씨트립(C-Trip·携程)이다. 씨트립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해외 단체관광 안내가 나온다. 전 세계를 6개 권역으로 나눠 홍보한다. 홍콩·마카오·대만, 일본, 동남아, 유럽, 미주지역, 호주·중동·아프리카 등이다. 한국은 어떻게 가나. 미안하지만 한국 관광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씨트립에 전화했더니 개인 여행을 권한다.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 서비스는 제공하겠지만 나머지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이럴 경우 한국어를 못하는 중국인이 한국 여행 갈 엄두가 나나. 그럼에도 지난해 방한 중국인이 479만명에 달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아직 크다는 방증이다. 물론 사드 보복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6년의 826만엔 크게 못 미치지만 말이다.


중국 대중의 사랑을 받던 한류 역시 중국 당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은 변함이 없다. 베이징 곳곳에 보이던 한류 스타의 모습, 중국 휴대폰 컬러링을 점령했던 한국 음악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러니 한류 스타와 함께 중국을 파고들었던 한국 화장품 등 관련 상품도 악전고투다.


한국 정부도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7월 18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아시아 대사들을 초청했는데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 눈길을 끈다. 왕이 국무위원 바로 왼쪽에 환한 모습의 지재룡 북한 대사가 자리했다. 우리 장하성 주중 대사는 맨 뒷줄에 위치했다. 얼굴이 가려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중국 내 한껏 쪼그라든 우리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7월 22일엔 중국의 통일전선조직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에서 아시아 각국 대사들을 초청했다. 지재룡 북한 대사가 주빈으로 행사장을 누비고 다닌 데 비해 장하성 대사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 내 한국의 존재감은 왜 이렇게 작아진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로 사드 배치에 대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시 주석이 한국에 관해 시큰둥한 입장이다 보니 그 아래 모든 이들이 한국을 데면데면하게 상대하는 것이다. 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더 걱정이다. 한국 정부는 2017년 10월 31일 중국과 체결한 ‘3불 합의’, 그리고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12월 방중을 통해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는 입장이다. 한데 뭐가 봉합됐나. 해결된 게 뭐가 있나.

정부는 무엇을 했나


중국은 7월 24일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오히려 사드 문제를 더 부각시켰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엄중하게 파괴했고 지역 국가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엄중한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사드 문제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어떻게 할 건가. 사드 배치를 물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면에서 중국의 마음을 살 노력이 필요하다. 시 주석이 적극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한·중 협력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시진핑 방한 초청 외교’에 올인해야 한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초청 외교’란 말이 있다. 상대국 지도자의 마음을 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핵실험에 격노한 시 주석의 얼어붙은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삼고초려가 아닌 사고초려를 해 시진핑의 6월 방북을 성사시켰다. 평양 시민 25만명을 연도에 세우고, 관중 10만명을 5·1 경기장에 운집시켜 시 주석의 마음을 공략했다.


정부에 묻고 싶다. 어떤 노력을 기울였냐고. 그저 세월이 흐르며 중국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린 건 아닌지. 북핵 관련 중국의 건설적 역할만 주문하는 ‘부탁 외교’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사이 베이징의 한인 민생은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는데 말이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