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비평가이자 문헌학자 안토니오 프레테가 그랬다.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알리라는 이름의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 그는 지금도 알리를 생각하면 두 개의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떠올린다고 한다. 하나는 화사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올리브나무들 사이에서 그의 옆에 누워 있던 알리의 모습이다. 그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싶은 목가적인 풍경. 그런데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 거기에 겹쳐진다. 그 다음 날 보았던 알리의 슬픈 눈이다.
슬픈 사연은 이랬다. 알리가 광견병에 걸린 유기견과 싸우다가 물려 상처를 입었다. 어른들은 광견병이 아이들에게 전염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알리의 생명을 거두기로 결정했다. 그때 소년은 탁자의 다리에 묶여 있던 알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인간이 정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눈이었다. ‘끝없는 슬픔’과 ‘온 세상의 고통’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인간의 것과 다를 바 없는 슬픔과 고통이.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슬픔과 고통으로 일렁이던 강아지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였다. 그가 고통을 주제로 한 ‘동정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마지막 장을 동물의 고통에 할애한 것은 그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동물원 사업, 오락성 사냥, 생체해부, 육식을 위한 도살의 문제까지 깊이 성찰하게 된 것은 그 상처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물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명에 대한 얼마나 큰 동정 혹은 사랑이 있어야 과연 이 무분별한 고통의 생산 과정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가?’ 타자의 고통, 동물을 포함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은 이렇듯 강아지의 눈에서 시작되었다. 그 눈에 담긴 슬픔과 고통이 그를 깊고 따뜻한 사유로 이끌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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