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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대나 태자의 눈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05〉

바람아님 2019. 9. 12. 08:14
동아일보 2019.09.11. 03:03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기로 유명한 태자가 있었다. 어떤 바라문(승려계급)이 그걸 악용하여 아들과 딸을 종으로 삼겠다며 달라고 했다. 태자는 거절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내어줬다. 바라문은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을 끌고 가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태자의 눈에 비통한 눈물이 흘렀다.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은 이 장면을 이렇게 노래한다. ‘바라문에게 주실 때 두 아이가 슬퍼하니, 그 울음소리에 땅이 진동하고/바라문이 아이를 때리거늘 태자가 슬퍼하니, 그의 눈물이 닿은 땅이 진동했다.’


그런데 월인천강지곡은 원전을 축약하다 보니 세밀한 부분을 생략했다. 원전에는 태자가 아이들을 내어주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 부분은 이렇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는데 아이들이 따라가지 않으려 하자 바라문은 태자에게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손을 묶어달라고 했다. 태자는 시키는 대로 아이들의 손을 묶어줬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순순히 따라오지 않자 바라문은 아이들을 때리며 끌고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자가 울자 땅도 울고 새들과 짐승들도 몸을 구르며 울었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에 아무리 강박이 되었기로 자식을 그런 식으로 내어주다니, 스토리는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땅과 새와 짐승마저 울게 만드는 태자의 비통한 울음이 말해주듯, 스토리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과장법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절대적 환대, 무조건적 선물의 본보기라고나 할까.


태자의 이름은 수대나. 그의 이야기를 담은 경전이 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이다. 석가모니가 전생에 그 태자였다고 한다. 세종은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달이 비추듯 천지를 비추는 보시(布施)의 이야기를 자신의 손에서 막 태어난 한글로 옮겼다. 불교를 억압하고 배척하던 시대였음에도.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