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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일기] 금이건 권력이건…혼자 가지려 하면 비극뿐이다

바람아님 2019. 9. 22. 08:35

(조선일보 2019.09.21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금이건 권력이건…혼자 가지려 하면 비극뿐이다


어렸을 때 톨스토이의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를 읽었다.

아침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한 보라도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뛰었으나 지나친 욕심으로 과로에 지쳐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책에도 소개하였고 강연할 때 인용하기도 한다.

소유욕의 노예가 되면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인생관이 절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학에 있을 때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세 강도 이야기'를 읽었다.

요사이 사회 현실을 보면서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아마 독일에서는 많이 읽히는 동화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세 강도가 만나 길을 함께 가고 있었다. 그들은 신세타령을 했다.

'우리도 최소한의 수입이라도 주어진다면 강도질을 끝내고 부끄럽지 않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소원이었다.

돈이 없어 할 수 없이 강도가 되었다는 후회였다.


금이건 권력이건…혼자 가지려 하면 비극뿐이다

/ 일러스트= 이철원


그들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맞은편 언덕 숲속에 번쩍이는 물건이 보였다. 무엇인가 싶어 가보았다.

황금 덩어리였다. 세 사람은 이것을 나누어 가지면 부자는 못 되지만 남들같이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셋은 발길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가 안정된 삶을 꾸리기로 했다. 강가에 있는 빈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다.

앉아 있던 두 강도가 노를 젓던 친구를 강물에 밀어 넣고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금괴를 삼 등분 하지 말고 둘이서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늦은 오후에 한 마을에 이르렀다. 한 강도는 동네로 들어가 도시락을 준비하고 남은 강도는 금괴를 지키기로 했다.

도시락을 사 들고 나오던 강도는 생각했다. '저놈을 치워버리면 내가 고향에서 큰 부자가 되겠는데' 하고.

술병 안에 독약을 타 넣었다.

남아 있던 강도도 같은 생각을 했다. 도시락 준비를 하러 간 강도가 갖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허리에 비수를 감추고 기다렸다.


점심 도시락을 차려놓은 강도에게 칼을 든 놈이 대들었다.

두 강도는 싸웠으나 칼을 든 놈이 상대방을 죽여 시신을 가까운 모래밭에 묻어버렸다.

이제 이 금괴를 혼자 가지면 부자가 되어 가정도 꾸미고 행복해질 거라며 웃었다.

격렬한 싸움을 했고 시신을 묻는 동안에 갈증을 느낀 강도는 죽은 강도가 남긴 술병을 열고 한참을 들이켰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는 쓰러졌다.

세 강도는 이렇게 모두 저승으로 떠나고 금 덩어리만 남겨 놓았다.


톨스토이는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되거나 전부라는 인생관을 갖고 산다면 허무한 인생으로 끝난다는 교훈을 남겼다.

세 강도 이야기는 탐욕에 빠져 이웃을 해치거나 독점욕의 노예가 되면 본인은 물론 사회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와 현 사회에 해당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욕망의 대상은 돈과 경제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더욱 무섭다.

권력의 독점욕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과 선한 서민들에게 불행을 초래한다.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만이 아니다.

권력을 독점하려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례는 지금도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