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군복 잘 보여 지휘 편리
적 소총 표적돼 희생은 늘어
지금은 그런 실수 반복 안 할까
100여 년 전에 벌어졌던 제1차 대전은 최초 개전 선언 당시에 참전국 모두가 전쟁을 반기면서 앞다투어 전선으로 달려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치를 떨었을 정도로 살상의 규모가 컸다. 비록 20년 후에 더 큰 전쟁을 맞이하지만 제1차 대전은 그때까지 인류가 경험한 최악의 전쟁이었다. 4년 동안 최소 추산으로도 1,500만여 명이 죽었고, 거기에다가 2,000만여 명이 다쳤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한 세대가 사라진 셈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벗어날 만큼 이렇게 피해가 커지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각국의 군인들이 입었던 화려한 군복도 그런 원인 중 하나였다. 위장 색이나 무늬를 당연시하는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놀랍게도 전쟁 초기에 군인들은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자초하려던 것처럼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색깔의 군복을 입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전통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너무나 컬러풀한 군복으로 멋을 낸 군인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진격과 방어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는 한다. 이쪽의 세력이 더 크다고 과시해서 상대의 사기를 꺾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 당시의 열악한 통신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 지휘관들은 체스 보드에 말을 두는 것처럼 부대를 지휘했는데 그러려면 멀리서도 쉽게 부대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했다.
연락을 깃발, 나팔, 전령에 의지했을 만큼 통신 수단이 나빠서 병사들이 눈에 잘 띄는 군복을 입은 것이었다. 18~19세기의 주력이던 전열 보병은 그렇게 노출한 상태로 싸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또한 매복이나 기습보다 약속한 시각과 장소에서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류를 가지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 상대방에게 먼저 발포하라고 권유했을 정도로 그럴듯한 명분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큰 피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당시 사용된 총포는 정확도, 사거리, 파괴력, 연사력이 형편없었다. 바로 눈앞이라 할 수 있는 30m 앞에 있는 표적도 맞히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최초 사격이 빗나가면 다음 사격을 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처럼 모두가 같은 조건이니 화려한 옷을 입고 노출해서 전투를 벌여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눈에 잘 띄는 군복의 이면에는 지휘의 편리함 등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군복은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기 전까지는 유효했다. 1870년의 보불전쟁 이후 최초로 벌어진 강대국 사이의 전면전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당시 전쟁을 이끌던 당국자들의 사고방식은 나폴레옹 시대에서 멈춰져 있었다. 더구나 발칸전쟁, 러일전쟁 같은 국지전을 통해 각종 무기의 살상력이 입증된 상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엔 화려한 군복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무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제1차 대전 발발 당시에도 이러한 전통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정된 사고와 발달한 전쟁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컸던 바람에 희생자가 더 확대된 것이다.
결국 멋진 군복을 입은 병사들은 좋은 표적이 되었고 전선을 무수한 피로 적셨다. 얼마 가지 않아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기 바빴지만 당연한 상식을 깨닫기까지 덧없이 사라진 생명이 너무 많았다. 의장대에게나 어울릴 군복을 입혀 군인들을 사지로 몰아낸 당시의 지휘부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도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문제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