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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67] 먼지 많은 세상

바람아님 2019. 12. 13. 11:27

(조선일보 2019.12.13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티끌과 먼지를 가리키는 한자는 진(塵)이다. 사슴[鹿]과 흙[土]의 합성이니, 뜻은 자명해진다.

사슴이 땅을 밟고 다닐 때 생기는 흙먼지다. 바람과 함께 먼지가 일어나기 쉬워 풍진(風塵)이라고 곧잘 쓴다.


세상은 각종 이해(利害)에 따른 다툼이 모질게 일어난다. 그를 먼지에 빗대 일컫는 말은 홍진(紅塵)이다.

사람의 잡다한 욕구가 소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의 별칭이다. 한편으로는 번화한 도시 등을 일컫는다.

달리 진세(塵世), 진환(塵寰)으로도 적는다. 먼지 가득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번잡한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불가(佛家)의 지칭이다. 그래서 출진(出塵)으로 적으면 세간의 잡다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67] 먼지 많은 세상


중국은 먼지가 많은 땅이라 이렇듯 관련 단어가 적잖게 만들어졌다. 서북에 발달한 사막과 건조 지대,

토사(土沙) 함유량이 많은 황하(黃河)의 퇴적작용이 빚어낸 중국 북부 지역의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진애(塵埃), 사진(沙塵)이라는 말을 잘 썼다가 이제는 무매(霧霾)라는 단어가 흔해졌다.


공기 중 습도가 높은 안개 형태의 물 분자[霧], 본래는 '흙먼지'를 가리켰으나 요즘은 스모그의 지칭인

오염 성분[霾]을 합친 시사용어다. 우리가 최근 들어 자주 겪는 '미세 먼지'의 중국식 표현이다.


중국은 오래전에 이런 먼지를 의식한 문화적 토대가 있다.

먼 곳을 다녀온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생 많았다"며 베푸는 식사를 세진(洗塵)으로 적는다.

'먼지 씻어주기' 정도로 이해하면 좋은 말이다. 나름대로 먼지라는 환경 요소에 적응한 문화적 습속이다.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중국발(發) 미세 먼지에 휘감겨야 하는 우리가 정작 문제다.

중국과 강력한 교섭에 스스로의 먼지 저감(低減) 조치도 궁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은 그를 늘 받쳐주지 못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먼지가 더 가득한 사회로 변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