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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다시 쓰는 '금수회의록' 신소설풍으로 <하>

바람아님 2020. 1. 25. 06:55


중앙일보 2020.01.24. 00:32

 

호랑이 "마음고생 위로해야 공정"
승냥이 "냉정한 신조선책략 필요"
쥐 "묘란 사란 헤칠 협치가 중요"
곰 "숲 속 세평과 식견 들어야"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호랑이=본원의 이름은 호랑인데 별호는 산군이올시다. 내가 흉포하다는데 하늘이 준 천성을 발휘할 뿐 외려 정의롭고 공정하다 하겠소이다. 내가 없으면 산중 질서와 윤리가 지켜지겠소? 나는 굶주릴 때만 먹이를 찾을 뿐, 질서를 존중하는 공정대장이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나보다 더 무서운 게 정치라 했소이다. 공정을 입에 달고 사는 정권이 지난 가을 체면을 구겼는데, 사간원 대간(臺諫) 조국이 불공정과 비리의 모범을 보인 것 아니겠소. 그 시비로 통령이 사사로이 ‘마음 빚을 졌다’ 하니 세인들 마음고생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리오.


공정은 분수와 명예를 지키는 신독(愼獨)에서 나오거늘, 비리를 파헤치는 의금부도사가 무서워 포도청 장수들을 유배보내 수족을 자르니, 마치 앞문으론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론 승냥이를 불러들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공수처법이란 호랑이 위에 포수를 두는 꼴이니 만약 포수가 권세가들에게 매수되면 어쩌리오. 인간 세상에는 실로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공정이 어려운 법, 내 명예 지키는 법과 경륜을 배우면 어떻겠소? (만장 박수). 그러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승냥이가 훌쩍 연단에 뛰어 오른다.


◆승냥이=사악한 간물(奸物)을 두고 세인들은 승냥이 같다 하는데 억울하외다. 내 본디 이름은 늑대요, 한번 혼인하면 조강지처로 알고 평생 하는 의리가 원앙(鴛鴦)보다 낫고, 새끼 기르는 정성이야 사람에 댈 바 아니오. 통령은 동포의 부모이거늘, 임기 끝나고 잊히리라 하면 우리는 고아신세, 무책임의 극치라. 남북문제도 그렇소. 우리는 널리 나돌아 다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사정과 정황을 빠삭하게 터득하오만 말을 안 할 뿐이외다. 남과 북이 ‘생명공동체’라는 통령의 말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오만, [동물농장] 나팔륜같은 북한 군주가 속종(내심)을 바꿨고, 북한 매체가 통령더러 소대가리 쌍욕을 퍼붓는 건 분통이 터지오.


그래도 통령이 날마다 개여울에 나가 굳이 잊지는 말라 애타는 터에, 미국통령 트럼프가 귀뜸도 않고 북한과 직거래하고 일본의 아베가 살살 중국에 접근하는 형세에 일편단심, 현하지변(懸河之辯)만 갖고는 개밥의 도토리 신세니, 금강산관광, 국제평화지대 같은 옛노래는 치우고 퇴역 외교관들을 다 모아 미.중.일이 옳다구나 할 책략을 내놓는 것이 재바르게 널리 돌아다니는 승냥이의 지혜라. 150년 전 [조선책략]을 참조하면 친미(親美), 결일(結日), 연중러(聯中露)가 맞는 판세라, 쓸데없이 고집하다 북풍.서풍에 휘말리고, 남풍.동풍에 본전도 못 찾을 판이니, 자주.반북 패싸움 그만하고 대소(大小) 책사를 불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실리를 기하는 게 급선무라. (박수 소리 진동). 이에 촛불도 다 타고 밤이 이슥해졌는데 한구석에서 입만 옹송거리던 쥐가 저요! 하고 외치더니 슬금슬금 연단으로 기어오른다.


◆쥐=저는 세인이 싫어하는 쥐올시다. 저더러 고상하게 ‘서선생, 서선생’ 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식량을 구하는 지략을 칭송하는 일리 있는 말이오. 우리는 양식을 모두 축내는 파렴치한은 아니외다. 본디 동양고사에서 우리를 현자(賢者)라고 부른 이유가 있소. 부처님이 상을 걸고 경주를 시킬 때 일찍 출발한 황소 등에 타고 먼저 뛰어내려 일등을 하였소. 황소가 억울해 한들 내 알 바 아니고, 남의 힘을 활용할 줄 알아야 생존하듯 각자도생은 어떠하오. 4월 총선 이후 대선까지 민심과 민생이 죽처럼 들끓어 정의와 공정은 만추 낙엽처럼 시들어 떨어질 터, 다음 정권에서 힘깨나 쓸 권세가 댁으로 이주할 계획에 마음이 벅차오. 우리가 다산성인 이유도 다 양식을 탐지하는 탁월한 후각(嗅覺) 덕분 아니겠소. 타고난 사교술과 자제력으로 보수.진보도 없고 오직 묘란(猫亂)과 사란(蛇亂)을 헤쳐 갈 협치만 궁리하니 이 어찌 정치꾼의 모범이 되지 않으리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는 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나의 낙천성과 꼭 맞는 이유요. (사방 웅성대는 소리). 그러자 잠에 겨운 곰이 다 탄 촛불을 들고 연단에 오른다.


◆곰=다 옳으신 말씀이오. 이 숲 속의 탁견과 세평에 감탄하였소이다. 세인들이 다 알아들었을 터인즉, 이것으로 고만 폐회하고자 하외다. 기록을 맡은 서사(書司) 염소는 잘 정리해두시오. (만장 박수). 그 때 망을 보던 솔개가 급히 내려앉아 외치기를, 의금부 포졸들이 출동해 이리오고 있다는 소식이오, 불길한 예감이 드니 급히 돌아가는 게 옳겠소이다, 한다.


들짐승은 껑충거리며 뛰어가고, 날짐승을 푸득거리며 날아가고, 곤충 미물들은 왱왱거리며 흩어지는데 염소만 홀로 남아, ‘드루킹더러 SNS 도리질 치라할지 결정해 주사이다’ 중얼대니, 얕은 귀먹은 솔개 왈, ‘뭐, 돌싱이 SOS를 쳐? SOS는 요망(瞭望) 전령인 내가 할 일이지 웬 돌싱?’하고 핀잔을 주고 급히 망루로 날아가더라. 산야에 섣달그믐 적막이 괴괴한데 추(秋)씨 성을 가진 법부대신이 파견한 포졸들 횃불이 저 멀리 일렬종대로 올라오더라. 〈끝〉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