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 속으로]그 많던 신문팔이는 어디로 갔을까

바람아님 2014. 1. 27. 18:25

홍순태, 서울 중구 명동, 1971


새벽 다섯시의 늦은 귀갓길.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분명 우유나 신문이 배달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잠깐이 지루해 몇 층에서 서는지를 눈여겨본다. 과연 몇 집이나 똑같은 신문을 구독하고, 똑같은 유제품을 마시는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니나다를까 꼭대기에서 마지막으로 멈췄던 엘리베이터는 임무를 마치고 쏜살같이 내려오더니 카트 속에 신문을 담은 아주머니 한 분을 내보낸다.

우리 집 현관 앞에서도 신문이 기다리고 있다. 좀 전의 아주머니보다 먼저 다녀간 모양이다. 배달하는 사람을 목격한 직후여서일까. 문득 신문에서 사람 냄새가 더 많이 풍긴다. 아직도 누군가가 아파트의 층층을 돌면서 신문을 나른다는 사실에 까닭 모를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구식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문팔이가 사라지고, 호외도 사라져 버리고, 가판대의 신문 판매가 시들해진 시대에, 사람이 손수 신문을 나르는 일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원로 사진가 홍순태 선생의 작업 속에도 신문팔이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1971년 명동에서 그는 경향신문을 손에 들고 서 있다. 먼발치로는 손자뻘이나 됨직한 남학생들이 경쟁자를 자처하고 있다.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한복 차림이다. 소매를 기웠지만 정갈한 광목 저고리와 강단 있는 눈매는 마치 그가 처한 변화된 현실과 충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생활전선에 뛰어들던 시절이다. 신문팔이는 나이가 어리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비교적 수월한 돈벌이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이 노동의 풍경 속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돌아가고 노인들은 모두 평화로운 노후를 즐기는 게 아니라면, 주유소나 피자가게, 전단 배달 같은 비정규직의 틈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팔기 위한 것이든 읽기 위한 것이든 신문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진 삶을 사는 그들 앞에서, 가난했던 과거보다 마음은 더 궁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