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어부바 #11, 2004, 서울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어린이 한 명에 어른 한 명, 아이의 두 발에 어른의 두 발이 필요한 이 상황의 불편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공감한다. 아이들은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반대로 어른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아이들은 따라다닌다.
사진가 노순택은 자신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집요한 동행을 ‘무자식은 상팔자요, 유자식은 쌍팔자다’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두 사람의 인생을 사는 일이자, 욕이 나올 만큼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를 업고 있거나 목마 태우고 있는 장면을 모은 그의 ‘어부바’ 시리즈는 이런 현실감에서 시작됐다. 아이와 어른의 불가피한 동행은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므로, 그가 다녔던 모든 장소에서 ‘어부바’는 탄생했다. 플래시를 터뜨려 인물에만 강하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의 어부바 사진에서 믿음직스러운 아빠의 등이나 따뜻한 엄마의 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의 사진은 업고 있는 어른이나 업힌 아이나 우스꽝스럽고, 고단하고, 짠해 보인다.
매향리, 강정 등 평소 한반도의 분단 현실이 파생시킨 문제들에 주목해온 작가답게 노순택은 아이를 업고 있는 평범한 사진 속에도 꽤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작가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지난 대선 결과, 대기업의 족벌경영을 향해 한반도는 어부바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세습을 멈추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결국 작가는 어부바의 풍경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인간만큼 오래 부모의 품에 안겨 지내는 생명체가 있을까. 어부바는 인간의 유약함을 표상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인간만큼 오래 부모로부터 지혜와 권세와 돈을 지원받는 생명체가 있을까. 어부바는 인간의 강인함을 표상한다.’ 영원히 두 발이길 거부하는 인간의 이 집요함은 왜일까. 가정의 달을 기념해 스핑크스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2013년 류가헌 갤러리에서 전시 되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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