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 속으로]결혼 33주년

바람아님 2014. 2. 3. 21:26

1980년 5월 18일, 광주카톨릭센터



박찬우씨는 날씨가 굉장히
좋은 봄날에 혼례를 올렸다. 식은 낮 12시에 가질 예정이었는데, 신부가 도무지 도착을 안 했다.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던 시절이라 일요일인데도 거리에서 시위가 계속되었고, 신부는 그 바람에 차가 막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결국 혼례는 2시간이나 늦게 시작됐다. 문을 닫았어도 날아들어오는 최루탄 냄새 때문에 신랑·신부는 물론이고 손님들까지 모두가 훌쩍거리는 ‘눈물의 결혼식’이었다. 식이 끝난 후 신랑·신부는 그 당시 유행을 따라 경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날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당사자들 외에 모두에게 그토록 특별한 날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날은 바로 1980년 5월18일이었다.

그들이 경주에 머무는 사이 혼례를 올렸던 광주가톨릭센터는 5·18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지속적으로 시위를 열었던 항쟁의 중심부가 되었다. 식을 올린 지 불과 이틀 후에는 계엄사의 언론 통제 아래서 편파방송을 내보내는 데 성이 난 시민들이 광주MBC 건물에 불을 질렀다. 그곳은 박찬우씨의 직장이기도 했다. 박찬우씨 부부는 계엄군이 광주를 완전히 점령한 5월27일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수년 전 광주MBC를 정년 퇴직한 그는 이제 결혼 33주년을 맞이한다. 그날은 사망 날짜를 정확히 모르는 희생자들의 제삿날이기도 하다.

박찬우씨의 ‘평범한’ 결혼식 사진은 작전명 ‘화려한 휴가’가 어떻게 개인의 아무렇지 않을 것만 같던 봄날에 치명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지배권력은 역사를 크고 굵직하게 서술하지만, 이렇듯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자 피해자들이란 늘 평범한 민초들이다. 작은 앨범 사진 한 장은 그 민초들이 거쳐온 세월에 대해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