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 속으로]초청장

바람아님 2014. 2. 7. 19:15

이동근, 보티투의 첫 고향방문, 베트남 건터, 2011


시작은 우연이었다. 외국인 주부를 위한 한글학교에서 자원봉사를 맡으면서였다. 어눌한 말씨, 서툰 글씨 너머 주부들의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됐다. 문제가 생기면 절박한 마음에 전화를 거는 주부들도 많아졌다. 가정 방문을 요청했고, 그녀가 꾸린 가정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말해 그녀들은 가정을 꾸렸다기보다 가정에 속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애초 결혼 에이전시가 만남을 주선할 때부터 평등한 부부관계를 전제할 수가 없었다. 대화는 아주 짧게 이뤄졌고, 1차 선택권은

남자에게 있었다. 이렇게 결혼한 신부들은 모두 ‘초청장’이 필요했다. 초청장은 한국인 배우자가 외국인 배우자의 입국을 위해

보내는 서류다. 그야말로 새로운 나라, 새로운 가정으로의 초대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은 날들도 많았다.

삶의 대부분은 남편에 의해 ‘대리’되었다.

사진가 이동근의 ‘초청장’은 이 과정 속에서 이뤄진 5년의 결과물이다.

올해 그는 이 작업으로 KT&G 상상마당에서 한국 사진가에게 수여하는 꽤 큰 사진상도 받았다. 그의 사진 속에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아버지와 딸처럼 보이는 부부나, 사돈네 마을에서 계절노동자로 일을 하는 친정어머니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사이 남편이 바람을 피워 친정으로 쫓겨나야만 했거나, 신부가 가출을 해버려 무의미해진 가족사진도 꽤 많아졌다.

이동근은 최근 신부들의 친정나들이에 동행해 기록하는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친정에서의 신부들 모습은 사뭇 달랐다. 표정은

밝고 몸짓은 한결 자연스러웠다. 한국 사위가 부쳐준 150만원으로 마을에서 가장 번듯한 집을 지어 온 동네의 부러움을 받는

친정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친정이 시댁보다 훨씬 번듯하게 잘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친정 부모님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다부진 표정을 짓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가정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울타리이자 가장 짐스러운

굴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