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우, Utopia #11, 2008
북한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있다. 그것은 교과서나 주식 시세, 심지어 밥상머리 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끈질기게 따라다니지만, 그 실체는 작동 원리가 복잡해서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집요하게 일상에 침투하는 일종의 유령이다. 백승우의 ‘유토피아’는 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작업이다. 작가는 일본에 있는 북한 기념품 가게에서 우연히 정체불명의 사진들을 손에 넣었다. 누가 찍었는지 어떻게 일본에까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사진의 정황상 체제 내에 고용된 사진가가 찍은 홍보용 사진이었다.
백승우는 이 사진들을 ‘재료’ 삼아 그만의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킨다. 우선 사진에 있는 본래의 색깔을 걷어낸 뒤 하늘이나 벽 등 배경에만 강렬한 색을 집어넣음으로써 사진의 비현실성을 강조한다. 사진이 대상으로 삼은 우뚝 솟은 건물과 현대적 생산설비, 첨단 의료시설 등은 포토샵으로 그 규모나 길이를 조작해 스케일을 강조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작가가 애초에 입수했던 원본 사진보다 훨씬 더 선동적이고 체제 선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성영화의 장면처럼 오래되고 낡은 인상을 풍기면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강렬한 색들은 마치 백일몽처럼 화려하지만, 동시에 꿈속에서조차 꿈을 꾸고 있음을 느낄 때처럼 또렷이 비가시적이다. 이 위압적이면서도 텅 빈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가 조작해 낸 작품 속 세계보다도 원본 사진에 있던 세계가 훨씬 더 조작되었음을 폭로해 내면서, 사진의 진실성을 무화시킨다. 결국 그의 사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상세계로서의 유토피아는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디스토피아의 다른 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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