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9.28 03:00
한 5년 전쯤인가.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유서 깊은 선비 집안을 방문하였다가 그 집 사랑채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밥상머리에서 집주인이 한마디 했다. “해방 이후로 호남 사람이 저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가는 경우는 조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해방 이후로 제가 처음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오리지널 호남 사람으로서 영남의 유서 깊은 선비 집안에 출입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20년 정도 지나니까 그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말이 신중하다는 점이다. 흥분해서 말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말을 내뱉어서 약속하면 되도록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므로 쉽게 약속하지 않고 신중하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수도 많지 않다. 되도록 상대방 말을 경청하는 습관이 붙었다. 이건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부터 어른들한테 교육받은 탓이다. 유년 시절부터 가정 교육을 받은 내용이, 자기 자랑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선비의 수신(修身)은 자기 자랑을 삼가는 데서 시작한다고 배웠다. 자기 자랑 많이 하는 사람은 수신이 안 된 것으로 간주했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0/09/28/RQPEDBF2YVA3RJS4OZ7KB64YPU/
[조용헌 살롱] [1264] 영남 선비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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