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충청도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웃겼나

바람아님 2014. 4. 11. 12:14

          

스타 코미디언 상당수가 충청도 출신
교류 많아 분쟁 잦은 지역특성으로 은유적 표현 발달·양반가문 많아 긍정적 기질
국내 최초 코미디 박물관 개관 등 응집력도 한몫
        
 
구전으로 전해오는 일화 한 토막. 충청도의 이름 모를 동네를 지나던 여행객이 국도변 수박밭에 먹음직스럽게 쌓여 있는 수박을 발견했다. 옆에 서 있던 아낙에게 물었다. "이 수박 파는 거예요?" 그러자 대답이 돌아왔다. "뭐하게유~?" 그는 다시 물었다. "얼마에 파시게요?" 그러자 아낙은 다시 대답했다. "내가 아남유~? 사는 놈이 알~지." 결국 여행객은 적당하다 싶은 가격을 불러 수박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낙네의 말. "냅둬유~. 개나 주게~."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청북도의 인구는 151만2157명, 충청남도의 인구는 202만8002명, 도합 충청도민은 354만159명으로 전국 총인구의 약 7.3%에 해당한다. 그런데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즉 희극인의 수로 따지면 이 비율은 훨씬 올라간다. 2004년 KBS, MBC 희극인실 자체 조사에서 해당 방송사에 출연하는 개그맨 중 한 기수별로 40% 정도가 충청도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고, 코미디언협회의 최근 자체 조사에서도 30%가 충청도 출신으로 집계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대한민국 코미디사를 수놓은 스타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들은 상당수가 충청도 출신이다.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83)을 비롯해 자니윤, 신소걸, 이상용 등 노장들을 시작으로 김학래, 최양락, 이경래, 배영만, 김명덕, 임하룡, 최병서 등 중견 코미디언들이 있다. 이 뒤를 홍기훈, 서경석, 이영자, 신동엽, 남희석, 김준호 등 40대가 잇고 < 개그콘서트 > 에 등장하는 '쌍둥이' 이상호·이상민 형제와 오나미, 이상구, 류근지, 안소미 그리고 < 코미디빅리그 > 장동민 등이 충청도 출신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니윤·임하룡·최양락·이영자·오나미·장동민·신동엽·김학래·서경석

이들의 응집력은 예전부터 대단했다. 1980년대엔 희극인들을 중심으로 '충청 연예인단'을 결성해 고향의 각종 축제 때마다 지원을 나갔다. 희극인실에서도 유독 충청도 출신끼리 잘 뭉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엄용수 코미디협회장은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체감적으로 눈에 띄게 활동하는 코미디언 대부분이 충청도 출신이었다"면서 "부지불식간에 조용히 대세를 장악하는 스타일 역시 충청도의 기질"이라고 말했다.

최근 충남 아산에 대한민국 최초의 코미디 박물관인 '아산 코미디홀'이 개관한 것도 충청도 출신 희극인들의 응집력과 열정의 산물이다. 아산 출신 최양락이 명예관장을, 개그맨 엄경천이 운영을 맡게 된 이 박물관은 대한민국 코미디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취지와 함께 충청도를 대한민국 코미디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포부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왜 충청도일까. 역사, 문화 등 각계의 전문가들은 이를 충청도의 역사적·지리적 특성에서 찾고 있다. 대체로 조용조용하고 여유가 있지만 결코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반에 퍼진 충청도 사람에 대한 인식이다. 또 이들이 이따금씩 날리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는 큰 웃음을 준다. 이 같은 기질은 좋은 희극인의 자질과 맞물리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충청도 사람들에겐 왜 이 같은 특질이 형성됐을까. 충청도는 지역적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 지역과 맞닿는다. 1981년 데뷔해 KBS에서 < 유머 1번지 > < 한바탕 웃음으로 > < 개그콘서트 > 대본을 썼던 장덕균 작가는 "여러 지역과 맞닿았다는 것은 교류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분쟁의 한가운데에 내몰려 있기도 했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뜻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은유적이고 에두르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직접적인 권유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에선 "내가 오늘 이러저러한 일이 있으니 밥을 사겠다"고 나선다면 같은 상황에서 충청도는 "워뗘? 한술 떠 볼텨?" 하고 묻는 식이다.

자연환경이 긍정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천안 출신 개그맨 김학래는 "충청도는 예로부터 홍수가 오고 가뭄이 와도 그럭저럭 농사가 됐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면서 "게다가 양반 가문이 많아 여유와 낙관적인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예전에 방송됐던 < 유머 1번지 > 의 '괜찮아유'는 이 같은 충청도의 낙관성을 집약해 보여준 코너다. 당시 이 코너에 출연한 김학래는 "그릇이 깨지는 상황에서도 충청도 사람들은 '냅둬유~. 깨지니 그릇이지 튀어오르면 공이유~' 하고 대답한다"면서 "이런 긍정의 기질이 유머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용수 협회장은 "나라가 힘들 때 뜻을 펼친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한용운 시인, 유관순 열사 등이 다 충청도 출신"이라며 "은근하면서도 기개 있는 모습이 한국인의 기호와 잘 맞아 충청도 출신 희극인들이 사랑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