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3. 9. 4. 00:46
홍범도 공산당 입당 시비 건다면
루스벨트·처칠, 소련 협력도 문제
문재인 정부 일방 결정이 출발점
경직의 저주에서 풀려나야 산다
한국 정치는 상대를 부정하는 협량(狹量)에 갇혀 있다. 범부(凡夫)의 상식에 부합하는 최소합의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육사에 있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이 외부로 이전한다. 이번에도 여야 합의는 없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자유시 참변 때의 독립군 탄압 역할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북한 김일성이 등장하지 않았던 한 세기 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1922년부터는 소련)는 식민지 약소국의 독립을 지원했다. 한인 항일무장운동 그룹은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는 러시아와 자연스럽게 협력했다. 퇴역 후 고령이 되어 연금을 받기 위해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을 시비 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손잡고 나치 독일과 싸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총리도 “조국을 배신한 공산주의자”로 매도해야 할 판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희생당하자 솔밭에서 땅을 치고 울었다는 기록이 제시됐다. 독립군 탄압은 사실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노태우 정부는 유해 송환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했다. 모두 보수정부가 한 일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유기체는 부드럽다. 뻣뻣한 것은 죽은 것이다. 자유·민주·번영, 그 무엇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없다. 정치는 전쟁터의 총검(銃劍)이 아니다. 상대의 모순까지도 포용해 차선의 합의를 이뤄내는 전환의 상호 고백이고 고해성사다. 반공의 상징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해 농지개혁을 성공시키지 않았는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이 지독한 경직(硬直)의 저주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모두 살 수 있다.
https://v.daum.net/v/20230904004651580
[이하경 칼럼] 합의가 사라진 정치, 모욕받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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