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4. 19. 03:10
혹시 의대 광풍은 ‘피크 코리아’ 적신호 아닌가
성공의 절정에서 허망하게 추락하면 안 돼
선진화 지속되려면 진리 탐구의 정신 회복해야
최근 “의대 블랙홀”이 이공대를 위협한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발표하자 “의대 반수(半修) 열풍”이 불어 대학가가 썰렁하다고 한다. 명문대 공대에 입학한 장학생이 적만 걸고 재수 학원으로 직행하는 부조리한 현실이 뉴노멀(New Normal)이 된 듯하다. 서울 주요 대학 10곳의 신입생 중도 탈락률이 10%에 이른다. 미래를 위해 분투하는 청년들에겐 격려를 보내지만, 사회적으로 그 총명한 두뇌들이 창의적인 사유와 자유로운 상상에 활용되지 못함은 안타깝다. 대학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어떤 사회도 진리 탐구와 비판적 반성 없이는 지속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의대 블랙홀”은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적신호가 아닌가? 대한민국이 혹시나 성공의 절정에서 허망하게 추락하진 않을까?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런 염려를 놓을 수 없다. 지금도 세계의 유수 대학에선 천체물리학자들이 수백만 달러의 연구 기금을 활용하며 “의대 블랙홀”의 방해 없이 진짜 블랙홀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인류는 최초로 550만광년 떨어진 M-87 은하의 블랙홀을 촬영했다. 지구의 4대륙에 설치된 천체망원경 여덟 대에 잡힌 조각조각의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합성하는 방식이었다. 블랙홀은 극도로 밀도가 높은 거대한 질량 덩어리로 중력이 너무나 강력하여 빛까지 모조리 빨아들이는 시공간의 영역을 이른다. 지구만큼 큰 행성을 호두알보다도 작게 압축하면 블랙홀이 된다. 그런 블랙홀이 카메라에 잡힐 리 없지만 그 속에 빨려 드는 입자들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사라진다.
지금까지 한국은 후발 주자로서 서양의 자연과학과 자유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응용해 왔다. 그 결과 세계사에 빛나는 발전의 신화를 써올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성공 가도를 달려갈 수 있을까? 미래를 낙관하기엔 한국 사회의 지적 편향과 문화적 획일성이 심각하게 지나쳐 보인다. 어느 사회든 과도한 몰림, 일방적 쏠림은 총체적 위기의 징표다. 집단 지성이 균형 감각과 조절 능력을 잃으면 문명의 기획은 물거품이 된다.
지난 반세기 한국인들은 우수한 기술력으로 최첨단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여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 왔으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진리 탐구와 비판적 반성 없이 선진화는 지속될 수 없다....인류 문명사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신비를 풀려 하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https://v.daum.net/v/20240419031012757
[朝鮮칼럼] ‘의대 블랙홀’ 벗어나 진짜 블랙홀 탐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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