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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주인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로 교체하게 둘 수 없다”

바람아님 2024. 6. 8. 01:20

조선일보  2024. 6. 8. 00:56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끝내 무산된 통일정부 노력
이승만 ‘單政 발언’의 진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에서 공포된 미‧영‧소 3국 외상(外相)의 협정(모스크바협정)은 “한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미‧소‧영‧중 4국이 최대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남북한 정당‧사회단체의 협의에 의해 구성되는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주한 미군‧소련군 사령부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를 창설하고, 2주 안에 양측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모스크바협정이 알려진 직후부터 남한에서는 반탁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다. 1946년 1월 2일, 조선공산당을 위시한 좌익이 일제히 ‘찬탁’으로 돌아선 이후로는 좌우익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1월 16일, 미소공위 예비회담은 이렇듯 대규모 ‘반탁‧친탁 시위’가 번갈아 벌어지던 어수선한 서울에서 열렸다.

남한이 ‘반탁‧찬탁’으로 갈라져 극심한 혼란에 빠진 것과 달리, 김일성을 앞세운 북한의 소련군정은 급속히 안정을 찾아갔다. 1월 5일, 반탁 노선을 견지하던 우익 지도자 조만식이 의장직에서 축출되고 고려호텔에 연금된 직후,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는 ‘찬탁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월 8일, 정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김일성 위원장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인민위)가 출범했다. 3월 5일, 인민위는 소위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내세운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실제로 북한의 ‘정부’임을 증명해 보였다.

반탁 정국에서 이승만은 김구와 연대해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했다. 미군정은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 28명을 미군정 자문기관인 ‘남조선 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민주의원)으로 임명하고, 의장에 이승만, 부의장에 김규식, 국무총리에 김구를 선임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에게 반탁에 집착하지 말고,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와의 타협은 한반도의 주인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로 교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임을 알고 있었다.

한 달 남짓 중지했던 남선순행을 재개한 이승만은 정읍 집회에서 소위 ‘정읍 발언’ 혹은 ‘단정(單政) 발언’이라 알려진 연설을 했다....연설문 어디에도 ‘단정’이라는 말은 없었다....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겠다는 이승만의 신념과 혜안은 좌익에 의해 은근슬쩍 ‘단정 수립’을 획책한 듯 매도되었고, 그때 이승만에게 덧씌워진 ‘분단의 원흉’이라는 프레임은 오늘날까지 답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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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주인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로 교체하게 둘 수 없다”

 

“한반도의 주인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로 교체하게 둘 수 없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에서 공포된 미‧영‧소 3국 외상(外相)의 협정(모스크바협정)은 “한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미‧소‧영‧중 4국이 최대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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