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6. 1. 00:1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33회>
며칠 전 서울 사는 한 지인이 물어왔다. 현재 100만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한 “입 큰(big mouth)” 한국사 유튜버가 “조선시대”가 “일제 강점기” 때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면서 조선의 노비제까지 적극적으로 옹호했다고 한다. 그 유튜버가 조선 500년을 통틀어서 양반 주인이 노비를 살해한 기록이 10건 이상 나오면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공언했다며 지인이 물었다. “조선왕조 500년에 정말 그런 기록이 없나요?”
그 유튜버의 주장은 역사학의 기초 상식을 모르는 자의 아둔한 발상이다. 노비는 전답, 가옥, 가축과 더불어 조선시대 양반가의 4대 재산이다. 인류사에 스스로 자기 집에 불을 놓은 광인(狂人)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 이유 없이 재미로 가축을 죽인 주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노예를 함부로 죽인 노주(奴主)가 많을 수는 없지만, 저 유튜버가 말하듯 민본주의가 실현됐기 때문이 아니다. 소나 돼지도 잘 먹여야 깨끗이 관리해야 새끼들을 많이 쑥쑥 낳듯이 노비 역시 배불리 먹이고 잘 입혀야만 그 자식들이 많이 태어나 주인의 재산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노주(奴主)들의 노비 관리는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지독하게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사료를 들추다 보면,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 노비들의 사례가 심심찮게 보인다. 그 “입 큰” 유튜버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그런 사례가 10건이 넘으면 마이크를 놓고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반나절만 검색하면 누구나 어렵잖게 주인이 노비를 죽인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지면 제약 상 아래 13개의 사례만을 우선 소개한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이 근대적 민족국가 형성기의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로 촘촘한 그물처럼 뻗어나간 네트워크 국가라는 사실이다. 과연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가 21세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인도하고 계발할 수 있는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발휘하려 한다면,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분명하게 가려야만 한다. 전통 비판 없는 전통 미화는 맹목(盲目)이다.
https://v.daum.net/v/202406010010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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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4052500204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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