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8. 20. 00:06
신물나는 질문, 너는 누구 쪽이냐
진영끼리도 편 가르며 악화됐지만
장대익·강준만 릴레이 칼럼 보며
지식인 소통, 희망의 씨앗을 본다
20년 전에 나온 작가 김훈(76)의 산문집 제목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다. 덧붙일 말이 별로 없다. 너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내 편이냐 아니냐. 좋아지기는커녕, 악화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세월로 알고 있다. 종교보다 정치 성향 차이가 연애·결혼 불가의 1번 이유더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4000여 명 면접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이제는 같은 진영끼리도 누구 편이냐로 사생결단이다. 수박이냐 아니냐, 우리 팬덤이냐 아니냐, 밀정이냐 아니냐.
20년이 흘러 작가가 이번에 펴낸 산문집 제목은 ‘허송세월’. 그렇게 헛되이 시간만 흘러간 걸까. 이 주제만으로 일관한 책은 물론 아니지만, ‘적대하는 언어들’이란 제목의 짧은 글이 그 안에 있다. 주인공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1908~1953)다. 일제강점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최고봉. 서울이 고향이지만 그는 1947년 ‘사회주의 조국’ 평양으로 월북했고, 6·25 당시 인민군이 남하할 때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從軍)한 확신범이다. 하지만 휴전 직후였던 1953년 8월 그는 ‘미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사형당한다. 사회주의 조국에서 그는 ‘밀정’이었다.
어머니보다 이념을 우선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이라니. 신물이 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캐묻기보다,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를 따지기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 아니었던가. 오래된 거리처럼 뭉근히 사랑하고, 아이와 조금 더 놀아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하루하루가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문득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시인 신경림(1935~2024)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좌든 우든 믿지 않아. 성실한 놈만 믿어.”
https://v.daum.net/v/20240820000614192
[광화문·뷰] “난 좌든 우든 믿지 않아, 성실한 놈만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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