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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중국동포 치안센터에 돈봉투 놓고간 사연

바람아님 2014. 5. 19. 10:08
    지난달 22일 오전 1시. 서울 종암경찰서 석관파출소에 근무하는 신종환 경위는 동료 경찰관과 함께 순찰을 하다 성북구 석관동 석관치안센터 앞에 멈춰 섰다.

센터 출입구 문틈에 밝은 색 은행 봉투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딱 봐도 돈 봉투로 보였다.

봉투 겉에는 아무 글씨도 쓰여 있지 않았고 안에는 10만원짜리 수표 5장이 들어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을 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치안센터에 돈 봉투라… 수사 청탁인가.' 신 경위는 이를 경찰서 청문감사실에 신고했다.

곧 경찰은 '의문의 돈 봉투' 출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치안센터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전날 오후 8시께 봉투를 끼워놓는 한 중년 남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원은 알 수 없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수표 추적에도 나섰고, 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급여를 관리하는 직원의 계좌와 연결된 것을 확인하고 탐문 수사를 거쳐 CCTV속 인물을 찾아냈다.

봉투의 주인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중국 동포 최모(54)씨였다.

그가 경찰서 치안센터에 돈 봉투를 놓고 간 사연을 들은 경찰관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봉투는 최씨가 세월호 사고를 접하고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희생자 가족을 돕겠다며 낸 기부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금을 마련하려고 현장 반장에게 "돈 쓸 곳이 있다"며 약 열흘치 급여인 60만여원을 당겨 받았다. 이 중 생활비 10만원을 뺀 50만원을 통째로 냈다.

한 달에 150만여만원 남짓 손에 쥐는 최씨로서는 월급의 3분의 1을 성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13년 전 한국에 들어온 최씨는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 생활을 하며 원룸에서 홀로 살고 있다. 20대 후반의 아들은 결혼해 안산에 산다.

최씨는 집에서 가까운 치안센터에 돈을 놓아두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전달되리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등록된 모금단체에 기부할 것을 안내하며 최씨에게 돈을 돌려줬다.

치안센터 돈 봉투 사건은 이렇게 '내사종결'됐다.

경찰 관계자는 18일 "생활 형편이 어려운데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돕겠다며 월급을 쪼개 기부한 사연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며 "최씨는 자신이 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극구 꺼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