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5.23 선우정 국제부장)
우리의 관심이 한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음산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서해(西海)를 남쪽으로 잇는 동(東)·남(南)중국해 벨트를 경계로 미국·일본, 중국·러시아가 양측으로
선명하게 갈라지는 구도가 정착된 것이다.
엊그제 끝난 푸틴의 방중(訪中)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중·러가 영토 패권을 슬그머니 맞바꿈한 것이다.
엊그제 끝난 푸틴의 방중(訪中)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중·러가 영토 패권을 슬그머니 맞바꿈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內政) 간섭에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은 결국 러시아의 동유럽 패권,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서로 승인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러시아는 원래 동아시아 중화(中華)주의를 견제했다.
하지만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중국을 반(反)러시아 국제 연대에서 빼내기 위해 진영을 바꿨다.
세상사란 늘 이렇다. 무관할 것 같았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3개월 만에 지구를 빙 돌아 우리의 외교·안보 터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미·일의 결속 역시 상쾌한 건 아니다.
미·일의 결속 역시 상쾌한 건 아니다.
미국이 젊던 시절, 동맹 강화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 확대를 뜻했다.
하지만 미국이 늙은 지금, 동맹 강화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뜻한다.
미·일 역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 유지와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맞바꿈한 것이다.
일본이 '자위권(自衛權)'이라고 말하는 '전쟁의 권리'를 얻는 순간부터 아베 총리의 '오럴 해저드(Oral hazard·경솔한 발언)'는
역사 문제에서 안보 문제로 확대돼 양측의 균열은 더욱 벌어질 것이다.
외신은 이런 외교 지형을 '신(新)냉전'이라고 표현한다.
외신은 이런 외교 지형을 '신(新)냉전'이라고 표현한다.
이념 간판을 걷어낸 강대국의 패권 쟁탈전이란 점에서 '구(舊)냉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중·러, 미·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오래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구냉전이 끝난 1980년대 후반처럼 이들 중 어느 한 나라가 힘을 상실해 갑자기 균형이 깨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지형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동남아 국가들이 줄줄이 미·일 진영에 붙는 지금 상황을 보면 한국은 외로워 보인다.
독일 통일은 냉전 해체의 산물이었다.
한반도 통일 역시 미·일의 군사·경제적 도움과 중·러의 전략적 양해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데탕트(긴장 완화)'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을 둘러싼 외교 환경은 아주 심각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미 동맹에 의지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한반도 통일의 이상적 시나리오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의 처지는 이렇다.
올 초부터 통일에 대한 기대와 논의가 들불처럼 번졌던 것은 국민적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통일에 대한 기대와 논의가 들불처럼 번졌던 것은 국민적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자신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이 꼴인데 더 형편없는 북한과 합치면 어쩌겠느냐"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통일의 꿈'이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도전받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해야 할까. 물론 우리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이 한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음산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한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음산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대통령만큼은 밝고 강한 얼굴로 세계와 마주할 수 있도록 일상(日常)의 복귀를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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