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만물상 - 30m 근접 비행

바람아님 2014. 5. 27. 09:15

(출처-조선일보 2014.05.27 유용원 논설위원.군사 전문기자)


2003년 3월 미군 RC-135 정찰기가 북한 동해안에서 241㎞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을 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살피던 정찰기에 북 미그-29 전투기가 접근했다. 
미그기는 30m까지 근접해 조종사 수신호와 날갯짓으로 '북한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미 정찰기가 거부하고 비행경로를 바꾸자 미그기는 무모하게 정찰기 앞을 가로막았다. 
15m까지 접근해 아슬아슬한 위협 비행을 했다.

▶북 미그기는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할 듯 레이더를 겨눴고 급가속용 '애프터 버너(After burner)'를 점화했다. 
얼마나 가까웠던지 그 바람에 미 정찰기가 심하게 흔들릴 정도였다. 
1969년 미 정찰기 EC-121기가 북 미그기에 격추된 이래 동해 상공에서 가장 긴박한 순간이었다. 
일촉즉발 상황은 22분 만에 끝났다. 
정찰기 조종사 거친 대령은 "오키나와 기지로 무사히 돌아온 뒤 사흘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만물상] 30m 근접 비행
▶2001년 4월 중국 F-8 전투기가 남중국해에서 미군 전자 정찰기 EP-3E기에 근접 비행을 하다 충돌했다. 
중국 전투기는 두 동강 나 추락했고 미 정찰기는 왼쪽 날개 프로펠러가 부러지고 동체에 구멍이 났다. 
정찰기는 2400m나 곤두박질치다 겨우 균형을 찾은 뒤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불시착했다. 
정찰기 승무원은 "중국 전투기가 두 차례나 90㎝~1.5m까지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미·중의 줄다리기 끝에 미군 승무원들은 11일 만에 풀려났다.

▶항공기가 다른 항공기에 다가가 공중 충돌 위험이 생기는 경우를 '근접 비행 사고', 영어로는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한다.
미국에선 두 비행기 고도 차가 150m 이내면 '니어 미스'로, 30m 이내면 '심각함'으로 분류한다. 
훈련 비행이나 곡예비행처럼 미리 손발을 맞춘 경우는 제외한다. 
우리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시속 650㎞로 편대 비행을 하면서 서로 1m까지 붙는다고 한다.

▶엊그제 동중국해 상공에서 중국 SU-27 전투기들과 일본 자위대 정찰기 두 대가 30m까지 접근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시속 몇 백㎞ 군용기에 30m는 재채기 한번 잘못해 조종간이 흔들리면 곧바로 충돌하는 거리다. 
센카쿠열도와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둘러싸고 중·일 갈등이 커가는 상황에서 발생한 근접 비행이다. 
1차대전은 사라예보에서 터져 나온 한 발의 총성에서 비롯했다. 
중국과 일본은 작은 충돌이나 사고가 큰 비극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