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만물상 - 시진핑과 푸틴의 악수

바람아님 2014. 5. 23. 06:52

(출처-조선일보 2014.05.23 지해범 논설위원·동북아시아연구소장)


3년 전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은 중국 혐오와 경계심이 대단했다. 

어느 종합대 학장은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거기 사회주의는 없었다. 

정치와 경제 시스템은 무한정 따로 놀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질투 섞인 분석이었다. 

한 언론사 사장은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북한에 개입하면 러시아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동아시아에서 한국·일본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했다.


▶넓은 국토, 많은 인구를 지닌 두 라이벌은 한 세기 전만 해도 지금 처지와 정반대였다. 

아편전쟁에서 청(淸)이 무너지는 것을 본 러시아는 중국을 압박해 신강(新疆)과 연해주 영토를 넓혔다. 

청말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쓴 '조선책략'에는 러시아에 겁먹은 중국인이 잘 드러난다. 

'아! 러시아가 영토 확장에 주력해 온 지 300여년. 그 대상이 유럽에서 중앙아시아에 이어 동아시아로 이어졌으니 오늘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만물상 일러스트

▶중국은 한국전쟁에 나서 70만 넘는 젊은이를 잃었다. 

반면 한국전을 설계한 스탈린은 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두고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확산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손 안 대고 코 푼 셈이었다. 

196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81개국 공산당 대회에서 덩샤오핑이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자 욕설이 터져나왔다. 

흐루쇼프 연설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튿날 류사오치 중국 주석은 "너희 소련이 우리를 짓밟을 순 있어도 뼈를 부러뜨리진 못할 것"이라며 조찬 참석을 거부했다.


▶1969년 중·소 국경 아무르강을 지키던 중국 경비대가 강 복판 진보도(다만스키섬)의 소련군을 공격해 31명을 사살했다. 

6680㎞에 이르는 두 나라 국경 분쟁이 마침내 폭발했다. 

소련은 핵 공격까지 검토했지만 미국이 가로막았다. 

얼마 전 중·러가 아무르강에 철도 교량을 놓기로 합의했다. 굴곡 많은 두 나라 국경에 화해의 상징이 될 듯하다.


▶엊그제 상하이 정상회의(CICA)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손을 맞잡았다. 

시 주석 취임 후 일곱 번째 만나 5600자에 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의 '내정간섭'에 공동 대응한다는 어깨동무다. 

동아시아에서 미·일 동맹과 중·러 연합의 고래 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거기에 치이지 않으려면 우리는 '새우'가 아니라 적어도 '상어'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19세기 말 황준헌이 조선에 '오늘 급선무는 자강(自强)을 도모하는 것뿐'이라고 한 권고가 새삼 귓가에 맴돈다.



(게시자 생각)

마키아베리의 "군주론" 중 몇 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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