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최보식 칼럼 - 권총을 차고 다니는 김정은의 日記

바람아님 2014. 7. 2. 08:47

(출처-조선일보 2014.07.02 최보식 선임기자)

나는 아이처럼 울면서 조문객들을 받았다
악수하는 손이 벌벌 떨려 누군가 나를 죽일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집무실로 전화가 걸려오면…

최보식 선임기자미국 코미디 영화 '더 인터뷰'가 내 암살(暗殺)을 소재로 삼았다. 
외무성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의 기둥을 뽑아버리려는 노골적인 테러 행위며 전쟁 행위"라며 
충성심을 보여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서른 살의 나 김정은은 정말 뜨끔했다. 영화와 현실이 혼동된다. 
작년 가을 미국 랜드연구소도 내가 암살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며칠 전에는 중국 국제문제연구소도 비슷하게 언급했다. 
남조선을 방문하는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통일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삼겠다는 의도가 영 개운치 않다.

물론 내게 원한을 품은 놈들이 이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에 당과 군 간부들을 대거 작살냈으니까. 
재작년 말 평양 시내에서 암살 기도가 적발됐다. 본뜨는 놈이 나올까 봐 외부에는 알리지 않고 처리했다.

사실 내 앞에서 충성 맹세를 하는 인간들도 나는 믿지 않는다. 
장성택이 처형된 뒤로 이놈들은 '고모부가 저렇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당할 수 있다'고 쑥덕거린다고 한다. 
눈이 뒤집히면 총구(銃口)를 거꾸로 내게 돌릴 수도 있다.

그래서 경호 인력을 늘렸다. 현지 지도를 나갈 때는 내 허리춤에 권총을 찬다. 
어느 자리에서 화가 치밀자 나는 총을 뽑아 발사한 적이 있다. 북쪽에서는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2년 반 전 아버지가 죽었을 때를 떠올리면 창피하다. 나는 아이처럼 울면서 조문객들을 받았다. 악수하는 내 손이 벌벌 떨렸다.
누군가 나를 죽일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집무실로 전화가 걸려오면 깜짝 놀라곤 했다. 당·군 간부들과 회의를 할 때면 보고서조차 읽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내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때만 해도 북한 인민들 마음에는 '부모를 잃은' 나에 대해 연민이 있었다.

한동안 꼭두각시처럼 지냈던 내가 이 자리를 장악한 것은 내부 권력 투쟁 때문이었다. 
나를 후견하고 조종했던 실력자들은 새로운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려나곤 했다. 
아버지 시신의 운구를 책임졌고 사열대에서 전군(全軍)을 대표해 충성 맹세를 했던 총참모장 리영호도 그랬다. 
그를 쳐낸 이는 고모부 장성택이었다. 바깥에서는 "이제 장성택의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장성택은 최룡해 일파에게 뒷덜미가 잡혔다. 최룡해가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된 것 같았다. 
내가 현지 지도를 갈 때마다 그는 절뚝거리며 따라다녔다. 수첩을 꺼내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인민무력부 청사 앞에서는 내가 보는 가운데 다 늙은 그가 춤을 췄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미 당과 군의 요직에서 내쫓겼다. 이제 황병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도 얼마 갈지 알 수 없다.

권력은 이런 것이구나. 한때 위협적 존재였던 원로들도 별거 아니었다. 북조선에서 권력은 '백두혈통'인 내게서만 나온다. 
누구든 나를 등에 업어야 권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내가 그 권력을 거두면 그들은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이를 깨달은 순간 나는 할아버지뻘인 당·군 간부를 데리고 다니며 그들 앞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어깨에 별 4개를 자랑했던 대장을 별 두 개로 강등해 예전의 부하 밑으로 보냈다. 
잦은 인사 교체로 추종자들이 바싹 긴장하는 걸 구경했다. 
내 권력 앞에서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놈들만 불러들일 것이다.

인민들은 내게 더 이상 '연민'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 
장성택 처형을 방송에 내보낸 것은 내 권력의 유일성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민들은 장성택을 위해 눈물만 흘렀다. 
나를 향해 '패륜아' '후레자식'이라고 쑥덕거리는 놈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 귀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내 행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독재자로서 인민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과는 다르다. 
나는 오직 공포의 무기가 있을 뿐이다. 내게 반대하면 파면이 아니라 총살임을 보여줬다. 
바깥에서는 모르지만 이 안에서는 매일 지옥도(地獄圖)가 펼쳐지는 중이다. 
우리 인민들이 내게 삶에 대한 희망을 걸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치하에서 도망갈 수 없다.

인민들은 남조선에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여긴 지 오래됐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 누구와 손잡겠느냐'는 우리 인민들에 대한 남조선의 악의적인 조사에 따르면 중국 40%, 자력갱생 31.5%, 남한 27.1%로 나왔다.

남조선은 미제와 손잡고 외교·경제적 제재로 압박하면 다 해결되는 줄로 믿는다. 
전쟁까지 가면 몰라도 제재 따위에 굴복한 독재자는 지금껏 없었다. 물론 고통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순전히 인민들의 몫이다. 오히려 내게는 체제 결속의 구실이 됐다. 
아직은 흔들리는 나의 정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상의 내 일기(日記)는 모두 사실에 바탕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