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시론] 민주주의만큼 성숙해야 할 法治主義

바람아님 2014. 7. 17. 10:18

(출처-조선일보 2014.07.17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오늘은 제헌절이다. 헌법이 제정·공포된 지 66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성장은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성숙은 아직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법치(法治)보다 덕치(德治)를 우선하던 유교의 영향은 점차 약화되고 있지만 

법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며,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힘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준법보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 또한 여전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불법적 관행은 공직 사회와 기업, 심지어 학교 사회에까지 만연해 있다.


왜 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의 성숙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법치주의가 지속적인 발전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 의식 속에서 민주주의가 차지하는 비중과 법치주의의 비중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 법치가 곧 정의(正義)라는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까닭이다.

국민의 법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위정자에게 있다. 

집권층에 유리한 법을 만들어서 법의 내용적 정당성에 대한 불신을 낳고,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의 관행을 만들어 법은 가진 자의 도구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만든 것도 위정자다.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고, 적당히 탈법행위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잘사는 사회가 된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며, 법치가 곧 정의라고 할 것인가.

그 결과 국민도 법을 정의의 이념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따라 만들고 적용하려고 한다. 한·미 FTA 당시 일부 농민이 죽창을 

들고 시위에 나섰던 것은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자기 이익을 강력하게 관철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수결 원칙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는 민주적 정당성을 얻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을 구분하는 것은 국민 다수를 위해 진정한 이익이 되는 

것과 일시적으로는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으나 결국에는 국민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치는 다수의 결정이 정말로 정의와 합치하는지를 따짐으로써 소수자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다수 독일인이 소수 유태인을 억압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다수의 지지를 받은 나치당이라 하더라도 

위헌 정당이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 다수 정상인이 소수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법치의 정신이며 헌법의 정신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자의 상호 보완을 통해서만 인권의 존중, 인간의 

존엄이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 다만 제헌절을 맞이하여 법이 곧 정의라는 믿음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집권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