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문갑식의 영국통신] 한국인 大國을 꿈꾸는가

바람아님 2014. 7. 21. 09:47

(출처-조선일보 2014.07.21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노병(老兵)이 경례를 한다. 구부러진 어깨가 약해 보인다. 구십 넘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들(Who never came back home)'을 남은 이들은 잊지 못한다. 
가슴의 훈장에 영광보다 회한이 더 짙다.

전우(戰友)가 손짓한다. 70년 전 떠났지만 깃발로 환생했다. 붉고 푸른 유니언잭 2만6000개가 바람에 
휘날린다. 지난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연출된 광경이다. 1944년 그날 영국은 전쟁을 끝내려고 
여기 상륙했다.

당시 서로 싸운 연합군과 독일군은 20만명이다. 지금의 생존자는 3000명이 안 된다. 그중에서 영국군은
650여명이다. 우리 같으면 잊혔을, 아니면 누군가가 지워버렸을 역사다. 거기에 영국은 왕실 3대(代)가 참석했다.

영국은 편집광(偏執狂) 같은 나라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군인에게 특히 그렇다. 빚을 졌다는 걸 잊지 않는다. 
그 가운데 놀라운 것이 각종 전쟁 기념물이다. "정말 별의별 것을…"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영국 내 전쟁 기념물은 5만4000개라고 한다. 그 수치를 들으며 과연 국내에 6·25 기념물이 몇 개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올해 유럽에는 전쟁 관련 기념일이 많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70주년에 이어 오는 28일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다. 
올해 유럽인들은 감동적인 장면을 자주 목격할 것이다. 러곤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것이다.

나는 이런 자세가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고 본다. 
우리는 스스로 잘났다고 믿지만 남들 눈엔 남북(南北)·좌우(左右)·빈부(貧富)·동서(東西)로 산산조각 나서 발전은커녕 퇴보를 
고집하는 이상한 나라다. 더 놀라운 것은 자국의 존재를 비하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역사'라는 극언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도 이것은 '정신이상'으로 여긴다. 우리만 그런 헛소리를 양심(良心)의 외침처럼 숭배한다.

영국 역사는 이종교배(異種交配)로 요약할 수 있다. 왕실만 봐도 독일·덴마크·프랑스·네덜란드의 피(血)가 섞여 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帝國)'이란 말은 인종과 언어와 역사가 다른 거대한 용광로였다는 뜻이다.

이질적 요소에서 어떻게 질서를 찾았나? 주차장에 가면 요금 넣는 기계에 이런 문구가 있다. '1시간에 ○파운드…'. 
중요한 건 다음이다. '영수증이 안 보이거나 시간을 어겼는데 추가 요금 내지 않고 내빼면 벌금 100파운드'. 
이 돈은 독신자가 보름간 먹고살 돈이다. 볼수록 섬뜩한 문구는 도처에 있다.

영국 경찰이나 공무원은 위압적이지 않다. 웃으며 법을 집행하는 게 더 무섭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처럼 벌금 나왔다고 
공무원 멱살을 잡고, 시위하다 죽창 들고 경찰을 찌른다? 그런 사람이 살 곳은 적어도 영국에 없다.

도로 교통 위반, 불법 집회·시위,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 공권력에 대한 도전…, 이런 게 여기서는 모두 돈으로 환산돼 
청구된다. 처음엔 저항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용없다는 걸 안다. 결론은 질서를 지키는 것뿐이다.

나는 철저한 법 집행이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이라고 본다. 
국가에 대한 존중과 법질서 회복,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남의 눈에 비치는 
'편법을 일삼는 졸부(猝富) 민족'이란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