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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브라질 大敗가 말하는 세상사

바람아님 2014. 7. 24. 18:28

(출처-조선일보 2014.07.24 양상훈 논설주간)

자기를 모르고 상대를 모른 대가는 잔인했다
'겸허'와 '수비'… 스포츠만이 아니라 세상사의 핵심

양상훈 논설주간 사진"지금부터 보시는 분들, 독일이 5대0으로 이기고 있는 거 이거 자막이 잘못된 게 아니라 맞는 겁니다.
" 월드컵 독일-브라질전을 중계하던 TV 아나운서가 전반전 도중에 한 말이다. 
정말 경기를 보면서도 '이게 진짜인가' 싶었다. 
며칠 후 어느 자리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한 분이 
"이 세상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일어난다"며 
"나와 우리 기업에 이런 일이 닥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날 아침에 경영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고 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이 사건은 실제 많은 이에게 스포츠를 넘어서 세상의 교훈까지 떠올려보게 
만든 것 같다.

지나놓고 보니 브라질은 겸허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들떠 있었고 국민은 다 된 밥인 양 축제를 벌였다. 
이런 상태에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살필 수 없게 된다. 상대를 정확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해설을 해준 이영표씨는 브라질이 첫 실점을 하자 "네이마르가 아니라 실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뛰어난 공격수가 빠진 것보다 뒤를 받칠 수비수가 없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이씨의 지적은 불과 20~30분 사이에 참혹한 현실로 브라질을 덮쳤다. 과거 브라질은 수비가 아주 강했다. 
공격수보다 더 개인기가 좋은 수비수를 많이 배출했다. 월드컵 5회 우승은 수비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팀에서는 좋은 수비수가 부족했다. 
스스로 이 취약점을 잘 새기고 있었다면 독일 같은 강팀을 상대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비를 튼튼히 하지 않았고 거꾸로 공세적으로 나왔다. 
겸허하지 않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브라질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브라질이 두 번째 실점을 하자 이씨는 "아무도 예상 못한 대패(大敗)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왜 이씨는 2:0의 순간에 대패의 징조를 읽었을까. 브라질은 약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승리에 대한 중압감은 큰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엄청난 압력을 견뎌오던 선수들은 2실점 순간에 마침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깔려서 부서졌다. 
이씨는 이것을 보았을 것이다.

중압감의 발원지는 우승을 당연시했던 브라질 국민이었다. 대중(大衆)은 열정적일 뿐 냉정하지 않다. 겸허하지도 않다. 
강한 팀은 그런 대중과 떨어져서 초연하게 자기 스스로를 살피고 상대를 냉철하게 탐색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브라질엔 그런 리더십이 없었다. 두 골째 실점하자 감독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눈으로 휘청거렸다.

세상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 사건이 있기 직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시 주석이 서울에서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구애하면서 다들 한국이 어떤 기로에 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시절이어선지 '겸허'와 '수비'라는 두 단어가 머리를 맴돈다. 
교만하지 않은 자세로 최악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러고 있느냐는 걱정이 뒤를 잇는다.

우리는 세계적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경제·군사력만이 아니라 문화·역사와 같은 소프트 파워도 압도적인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에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 실력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상대의 힘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누구도 예상 못한 사태에 봉착할 수 있다. 이영표씨는 3:0이 되자 "가장 잔인한 월드컵의 시발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자신을 모르고 상대를 무시한 측에 역사는 잔인했다.

독일 감독은 브라질에 대승한 뒤 "독일은 침착, 냉정, 용감했다"고 자평했다. 우리는 침착·냉정보다는 열정에 가까운 사회다. 
어느 것이 낫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나 열정이 안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침착·냉정의 위력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때로는 침착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달아오를 때는 달아올라도 좋지만, 차분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는 반드시 그렇게 했으면 한다.

지금은 막강한 것 같아도 독일도 2004년에 루마니아에 5대1로 참패했다. 
독일의 침착·냉정은 그 후에 나타났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감독과 코치에게 그대로 믿고 맡겼다. 
그 코치가 이번에 월드컵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 
우리는 귀중한 경험을 쌓은 감독을 또 쫓아냈다. 그에게 비열한 공격도 퍼부었다. 
부족한 실력을 정성으로 메우려고 안간힘을 다한 선수들을 갖은 꼬투리로 매도했다.

K리그를 단 한 경기만 보아도 한국 축구가 아직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이 그 명백한 사실을 얘기했더니 '우리나라를 비하했다'고 비난한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경기에 졌다고 거리 응원장을 쓰레기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겸허할 줄 모르고 침착·냉정하지 않은 이 성정(性情)들이 어느 날 상상할 수도 없던 사태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일어나고는 한다. 스포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 게시자 추가 : 홍명보 전 축구 국대감독 K리그 비하 논란 ‘진실은?’ >>>
(출처-파이낸셜뉴스 2014-07-11)


▲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에서 'K리그 비하 발언'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K리그 최고의 선수가 유럽에 가면 B급이다"라고 발언해 K리그를 무시했다는 해석으로 K리그팬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 대해서 실패 원인을 여러 개 짚다보니까 하나의 생각이 나는 예선전을 거치지 않은 감독이었다""때문에 선수들의 장단점, 능력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정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팀의 골격 등을 자신이 아는 선수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자신이 2012년 올림픽을 다녀왔기 때문에 당시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놓고 평가를 했으며 모든 

선수들을 평가했을 때 이 선수들이 낫다고 당시 선수 선발 배경을 선발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A급 선수들이 있는데 이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대 선수들이 있다. 

우리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 밑에 있는데 과연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나가서 경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 그 선수들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을 때 과연 이거를 어떻게 선수 구성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이다.


홍명보 감독은 "만약 지금이 월드컵 전이라면 어떤 준비를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은 답변을 했다. 

홍명보 감독의 'B급 선수'라는 발언은 K리그를 직접적으로 비하한 것이기 보다는 

어떤 선수든 유럽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는 A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가 

유럽 이적 이후에는 이전만큼 활약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파 선수들과 K리그 소속 선수를 직접 비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은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K리그 선수들이 '그 밑에 있다'고 말했고, 

'지금 그 선수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선수'라는 말을 한 것도 사실이다.

유럽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K리그에서 맹활약한 선수인 것을 감안하면 홍명보 감독이 K리그를 비하했다기 보다는 

국내 선수들의 유럽진출 현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는 홍명보 감독은 물론 한국 축구가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K리그에 대해 유럽진출을 위한 중간 정거장 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은 

스스로 K리그를 수준 낮은 리그로 폄하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92년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인 포철 아톰즈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한 

홍명보 감독조차 K리그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면 엔트리를 전원 해외파 선수로만 채우지 않는한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구상하는 최상의 팀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여창용 기자 new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