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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해경은 해체가 아니라 강화·개혁해야 한다

바람아님 2014. 8. 21. 10:05

(출처-조선일보 2014.08.21 양상훈 논설주간)

중국 일본은 해경 증강… 우리는 해체, 약화
군내 폭력 심각하다고 국방부 해체할 건가
진짜 없애야 할 것은 어이없는 해경 인사


양상훈 논설주간세월호 침몰 때 해경이 보여준 것은 무능과 거짓말이다. 
해경이 잘했다 해도 인명을 얼마나 더 구할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배 안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밖으로 도는 해경의 모습을 보며 누구나 '저런 조직이 
왜 필요한가'라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이 분노를 아무런 여과 없이 국가 정책으로 쏟아붓는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이후 대책으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해경 해체를 위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해경은 기본적으로 해양 주권을 수호하는 기관이다. 
해난 구조도 중요한 임무이긴 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해경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고 해양 주권을 지키는 기관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린다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즉흥적인 결정이다. 
전방 총기 난사나 윤 일병 사망 사건이 나고 대응을 잘못했다고 국방부를 해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 안(案)에 따르면 앞으로 해경은 쪼개져 경비·구조 기능은 국가안전처로 흡수된다. 
수사 기능은 경찰로 넘어가고 전국 17개 해양경찰서는 해양안전서로 개편된다. 
우리 바다를 지키는 경비·경계 임무가 구조·안전 체계 아래로 재편되는 것이다. 
중국 경비함이 이어도에 출몰하고 일본 순시선이 독도를 배회할 때 우리는 인명 구조를 위한 조직과 지휘 계통을 따라 
대처해야 한다는 말인데, 실제로 이렇게 되면 앞으로 여객선 구조와는 차원이 다른 국가적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중국은 최근 바다와 관련한 4개 기관을 통합해 국가해경국을 신설했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해군 함정과 해경 경비함을 건조하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도 계속 강화·확대되고 있다. 
1000t급 이상 순시선 10척을 추가 건조한다. 예산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해상보안청에 새로 수사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중국은 해경 경비함과 항공기로 거의 매주 1회 이상 우리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정찰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이어도 상공을 자국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켰다. 
이어도에 가 본 사람들은 수없이 몰려오는 중국 어선들을 보고서 "여기가 어느 나라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미 서해는 중국 불법 어선들에 점령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일본은 2~3일에 한 번꼴로 독도 인근 해상에 순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통적인 해양 국가 일본은 제주 남방 해역에서도 우리 주권을 넘보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해경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한다고 한다. 
그것도 해양 주권 수호 실패 때문이 아니라 여객선 구조를 못 했다는 이유다. 
해경이 잘못해 승객 구조를 못 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자를 가려내 징계하고 불법이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 
해경 내부의 해난 구조 체계의 문제점을 찾아내 보강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예 해경 자체를 해체해버린다는 것은 내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릇을 깨버리겠다는 것으로 충격 요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충격 요법은 필요한 정도를 훨씬 넘는 조치로 일시에 불을 끄려는 정치적 행위다. 
국정에도 정치적 측면이 있으므로 대통령이 때로는 충격 요법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주권에 관련된 기관, 그 때문에 정부 수립 무렵부터 존속돼온 조직을 해체하는 것을 충격 요법의 수단으로 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해경을 개혁하면 될 것을 해체까지 하는 것은 대중(大衆)의 아우성에 호응한 것이다. 
얼굴 없는 대중은 감정적이고 무책임하다. 정치가 그렇게 출렁이는 물결에 맞춰 같이 춤추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우리는 압도적 국력을 가진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이 우리 바다 일부를 넘보고 있다. 해경은 해체할 것이 아니라 더 키워야 한다. 
미국 해안경비대(COAST GUARD·코스트 가드)는 기본적으로 주권 수호를 위한 군사 조직이다. 
해난 구조는 임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미 코스트 가드 사관학교는 미국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학교 중 하나다. 
우리 해경을 그렇게 만들어나가면 해경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해경 내에 해난 구조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을 새로 만들고 육성하면서 주변국에 대응하는 해양 집행력은 더욱 증강해야 한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해경청장으로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해 개혁을 맡겨야 한다. 
해경은 대통령 입에서 "해체"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을 받았다. 
이제 해경 해체의 문제를 인정하고 되돌린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세월호 사건 100일을 맞아 본지가 평범한 어머니 1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해경이 잘못했으니 해체한다'는 발상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도 더 보탤 말이 없다. 
역대 정부가 임명한 해경청장 13명 중 함선을 타본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진짜 없애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어이없는 행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