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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이승만을 난도질하고 유관순까지 죽인 左派 역사학자들

바람아님 2014. 8. 22. 08:26

(조선일보 2014.08.22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고교 국사 교과서 8종 중 절반이 3·1운동 소개하며 언급 안 해
美 선교사 지원받은 사실 빌미로 反美 성향 저자들이 누락한 건가
북한도 학교서 유관순 안 가르쳐… 史實도 내쫓는 무모함이 두렵다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사진만약 프랑스 교과서에서 잔 다르크(1412~31)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프랑스에 잔 다르크가 있다면 우리에겐 유관순(1902~20)이 있다. 3·1 독립만세 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은 항일 투쟁의 금자탑이고, 유관순은 그 상징이자 주인공이다. 
17세 소녀의 몸으로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모진 고문에 꼿꼿이 저항하며 숨진 유관순은 어느 
독립투사보다 강렬한 자취를 남겼다. 유관순을 뺀 3·1운동이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유관순 열사가 고교 역사 교과서 절반에서 '실종'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 도무지 믿기지 않아 교과서를 구해서 찾아보았다.
기가 막히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고교에서 배우는 8종의 한국사 교과서 중 4곳에는 유관순이란 이름이 단 한 자(字)도 적혀 있지 않았다. 진짜 주인공을 뺀 껍데기 3·1운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이를테면 전국 고교의 31%에서 쓰이는 '미래엔'의 교과서엔 3·1운동이 세 쪽에 걸쳐 기술돼 있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소리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모든 계층이 참여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 펼쳐졌다고 
썼다. 이 교과서엔 농촌 지역의 만세 운동이 장날의 장터를 중심으로 벌어졌다고도 적혀 있다. 
그러면서도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수천 명 군중의 선두에 섰던 유관순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저자(著者) 실수로 누락된 것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힘든 이유가 있다. 
유관순을 삭제한 교과서는 미래엔·천재교육·금성·두산동아 출판사가 발행한 4종이다. 
이 교과서들은 원래부터 좌(左)편향 기술이 문제 되던 것들이었다. 북한을 미화하고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그린다고 해서 
비판받아온 책들이다. 유독 그런 교과서에서만 유관순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을 단순 실수라든지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미스터리에 대해 저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유관순사업회가 해당 출판사 측에 공문을 보내 시정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다만 곽정현 유관순사업회 회장은 유관순의 '미국 관련성'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3·1운동 당시 유관순은 미국 선교사가 세운 이화학당 고등부 1년생이었다. 감리교회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 선교사 추천으로 
학비 면제를 받아가며 학교에 다녔다. 유관순이 투옥됐을 때 옥바라지를 한 것도, 고문 끝에 옥중 사망하자 시신을 수습한 
것도 이화학당의 미국인 교사들이었다. 유관순의 삶엔 미국 선교사들의 후원이 밀접하게 따라다녔다. 그래서 반미(反美) 
성향의 저자들이 유관순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것이란 게 곽정현 회장의 분석이었다. 설마 싶지만 유관순사업회 측은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기묘한 것은 북한도 유관순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대학까지 나와 탈북한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는 "학교에서 
유관순을 배운 일이 없다"고 증언한다. 물론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다. 북한의 역사 책은 3·1운동이 서울 아닌 평양에서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에 의해 시작됐다고 적고 있다. 3·1운동은 김일성 패밀리를 제외한 어떤 개인도 주체가 될 수 없는 
'인민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사정은 남한의 좌편향 교과서 저자들도 알고 있었다. '천재교육' 교과서의 공동 저자인 A교수는 2년 전 한 강좌에서
북한의 '유관순 배제' 사실을 소개한 일이 있다. 북한의 '평양'과 '인민' 중심의 역사 기술에서 유관순은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취지였다. 그랬던 A교수가 자신이 집필 멤버로 참여한 교과서엔 유관순을 한 줄도 적지 않았다. 그저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교과서들은 노동 탄압에 맞서 산화한 전태일(1948~70)에 대해선 자세히 지면을 할애했다. 유관순이 전태일보다 
역사적 의미가 적다는 뜻일까.

유관순이 누락된 한국사 교과서 4종의 고교 채택률은 59%에 달한다. 10명 중 6명의 고교생이 유관순을 전혀 배우지 못한다는 
얘기다. 교과서 감독 책임을 쥔 교육부는 이런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래도 되는 일일까.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기술은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왔다. 대한민국을 은연중 헐뜯고 북한의 모순은 눈감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렇게 이승만을 난도질하고 박정희를 격하시켰던 좌파 역사학자들이 이번엔 유관순을 교과서에서 실종시켰다. 
있는 역사적 사실까지 교과서에서 내모는 그들의 무모함이 나는 무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