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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베트남이 중국을 상대하는 법

바람아님 2014. 9. 1. 11:03

(출처-조선일보 2014.09.01 안용현 주북경특파원)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사진베트남은 중국과 1450㎞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한반도가 중국과 접한 1360㎞와 비슷하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한(漢) 무제에게 정복당한다. 
고조선도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공격을 받고 멸망한다. 
우리는 313년 중국 세력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베트남은 939년 독립 왕조를 세울 때까지 
1000년 동안 중국에 저항했다.

베트남이 중국과 가까워진 것은 1949년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다.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이 1920년대부터 중공 지도자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 등과 
교류한 것도 오랜 적대 관계를 푸는 데 도움이 됐다. 
베트남은 1950~1975년 프랑스·미국과 싸울 때 '공산혁명 동지' 중국으로부터 200억달러에 이르는 
무기와 물자를 지원받았다. 중국이 1965~1973년 베트남에 보낸 지원 병력만 32만명이다. 
60년 전 베트남이 프랑스를 몰아낸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는 중국이 준 105㎜ 곡사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양국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이 사망한 이후 중국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베트남은 중·소 분쟁에서 소련 쪽으로 기울었다. 
덩샤오핑은 베트남이 소련을 등에 업고 동남아에서 세력을 확장하자 1979년 20만명을 동원해 베트남을 침공했다. 
당시 중국은 '통일 베트남'이 동남아의 맹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1991년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다시 화해한다. 
양국 모두 개혁·개방(베트남 도이머이)을 추진하면서 경제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503억달러로 베트남 전체 교역액의 5분의 1을 넘는다. 
하지만 양국은 영유권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1974년 중국이 무력으로 빼앗은 남중국해 시사(西沙·베트남명 호앙사)군도가 발화점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베트남에서 300여㎞ 떨어진 시사군도 앞바다에 석유시추선을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베트남은 초계함과 어선 수십 척을 석유시추선으로 돌진시키며 저항했다. 
당시 반중(反中) 시위로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계 공장이 대거 불탔을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였다. 
중국은 베트남 신규 투자를 제한하는 등 보복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중국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미국을 끌어들였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8월 16일 호찌민에서 "조만간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 합참의장의 베트남 방문은 1971년 이후 43년 만이다. 
중국은 베트남과 미국의 접근을 눈치채고 지난 7월 석유시추선을 먼저 철수시켰다. 
중국이 영유권 분쟁에서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베트남은 이번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중국으로부터 모두 실리를 챙긴 셈이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과 일본·필리핀에 이어 베트남까지 적으로 돌리기 어려운 중국의 상황을 간파한 덕분이다.

한반도와 베트남은 중국과 떨어질 수 없었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이익이 교차했다. 
베트남이 강대국을 상대하는 '실리 외교'를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