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침묵의 가치

바람아님 2014. 9. 19. 12:23

(출처-조선일보 2014.09.19 니콜라 피카토·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회장)


니콜라 피카토·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회장 사진타국살이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그 나라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헤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침묵(沈잠길 침, 默 잠잠할 묵)이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은 꽤 고귀한 가치다. 

한국에서도 등산객이든 절을 찾는 사람이든 입을 굳게 다문다. 

대개 침묵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매번 그런 건 아니다.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가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야간 스키는 한국의 이색 경험 중 하나인데, 유럽에선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다. 

횃불을 들고 스키를 타던 옛날 옛적을 제외하면 말이다. 

스포츠로서가 아닌, 스키의 가치는 자연 경치와의 혼연일체, 그리고 고요함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스키장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슬로프를 내려와야만 한다.


소음은 피할 수가 없다. 

이건 방음이 철저한 고급 맨션이나 고층 아파트에 살더라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으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경비 아저씨의 음성을 피할 수 있는 재간은 없다. 

창문 청소 스케줄이나 쓰레기 분리수거 정보는 계속해서 귓가를 때린다.

서울에서 절대 고요를 맛보려면 분연히 1층 관리사무소를 찾아 경비 아저씨와 '방송 금지' 약속을 하거나, 

아니면 짐을 싸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살아야 할 거다. 

냉장고와 오븐, 엘리베이터, 세탁기 등 웬만한 주변의 전자 기기는 모두 '삐(beep)' 소리를 만들어내니까.

칼럼 관련 일러스트
괴롭긴 해도 이런 소리 없이 살아가긴 어렵다. 다만 때때로 침묵이 그립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침묵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느끼기 힘든, 아니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렇다(추석 땐 그래도 조금 조용했다). 
오래된 유럽의 도시들은 조금은 불편하긴 해도, 일요일 아침처럼 그런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서울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