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박재현 칼럼] 이방인 삶 즐기는 ‘두 한국인’

바람아님 2014. 10. 6. 10:56

[출처; 중앙선데이 2014-10-5일자]        

     

지난달 노르웨이 출장길에 무사히 현지에 정착한 두 명의 ‘한국인’을 만났다. 한 명은 오슬로대의 한국역사·사회·언어학 교수로 있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41·박노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연기자와 성우로 활동 중인 모나 그린(38·장윤진)이다.

유대계 부친과 러시아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옛소련 출신의 박노자는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 뒤 2001년 귀화해 한국 사람이 됐다. 모나 그린은 세 살 때인 1979년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됐고, 프랑스 출신의 남편과 결혼해 17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이 노르웨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과정은 자신들의 드라마틱한 인생만큼 달랐다. 한국을 바라보는 눈길도 많은 차이가 났다.

모나 그린은 어릴 적부터 “남과 다른 외모를 지녔다”는 자괴감으로 노르웨이 사회에서 외톨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보모를 하다가 우연히 연기에 눈을 떴다. 틈틈이 짬을 내 연기학원을 다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삶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와 TV 탤런트로 데뷔한 뒤 연극배우와 성우로 활동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의 삶이 안정적으로 바뀌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2007년 ‘생물학적 어머니’를 찾으려 한국을 방문했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 경험 등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Journey to the east(동쪽으로의 여행)’라는 제목의 연극을 오슬로에서 상연했다. 모나 그린의 ‘이방인’과 같았던 삶의 이야기는 현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됐다. 그녀는 “나에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 같은 위대한 자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정착 15년째인 박노자는 언론 기고와 저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슬로대의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통일신라시대 호국 불교와 관련한 논문을 준비하느라 요즘 정신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다. 그는 “더 이상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으며, 돌아갈 데도 없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노르웨이 생활이 휠씬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하자 “세월호 참사 등의 처리 과정을 볼 때 한국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근혜 정부 같은 보수 정권하에선 더 이상 발전이 있을 수 없으며, 이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보수정권의 사례를 분석한 자신의 논문에서도 입증된다고 했다.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엔 “한국에선 지식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득권층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에선 어떠한 해법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나 그린에게서 ‘희망의 한국 사회’를 엿봤다면, 박노자에게선 ‘가망이 없는 암흑의 사회’라는 진단을 받은 셈이 됐다. 모나 그린의 주장처럼 두 사람에겐 “한국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는 열등감이 가슴 한쪽에 블랙홀처럼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나 그린은 활발한 연기 활동을 통해 배신의 아픔을 치유하려 했고, 박노자는 한국 사회의 허위의식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자신의 좌절을 극복하려 한 것 같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만남의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한국 사회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하는 물음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도무지 봉합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냉소와 야유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 두 사람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부조리한 가치와 습관에 물들어 버린 한국 사회보다는 노르웨이에서의 이방인적 삶이 휠씬 더 인간답고 행복하지 않을까.”


박재현 사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