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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안개, 1시간 동안의 밀당은 그렇게 부서졌다.

바람아님 2014. 10. 24. 22:50

[출처 ; 한국일보 2014-10-22일자]

  

합천댐 하류 보조댐의 합천호 물안개

"물안개【명사】강이나 호수, 바다 따위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물안개의 사전적 정의는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건조하다. 관련된 시를 찾아보니 류시화의 '물안개'가 있다."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물안개처럼/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아주 쉽게 부서지더라"이제야 합천호에서 본 물안개의 모습과 흡사하다. 정확하게는 합천댐 하류 보조댐의 물안개다.

 

합천호 물안개

합천호 물안개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합천호 물안개는 서서히 그리고 급격히 사라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는 일출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그스레한 여명으로 시작한 햇빛은 피어 오르는 안개를 노랗게 하얗게 자유자재로 변화시킨다. 멀리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일 때쯤 안개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다시 한번 온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 넣는다. 전쟁인 듯 유희인 듯 그렇게 한 시간여 동안의 밀고 당기기는 호수에 파란 하늘이 비치고, 피어 오르던 물안개가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류시화의 시처럼 '아주 쉽게 부서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합천호에 온다고 매일 아침 물안개를 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 안개가 잦아지는 겨울이면 물안개의 비경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합천영상테마파크의 남영동 지하차도는 실제 모습과 흡사하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서울의 옛 모습을 되새기기 좋은 장소다.

바로 뒤편은 합천영상테마파크다. '태극기 휘날리며' '각시탈' '빛과 그림자'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다. 단순한 세트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크고 짜임새도 잘 갖췄다. 합천에서 만나는 서울거리는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원구단과 대흥극장 종로경찰서 서울역(경성역) 등은 세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감 있다. 특히 남영동 지하차도는 실제모습과 다름없다. 건물 위치가 좀 뒤죽박죽이지만 옛 서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추억을 되새기기 좋은 장소다. 주말에는 가상의 서울거리에 전차도 운행한다.

●쉬어가는 여행, 정양늪 생태공원

갈대와 버드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정양늪 생태공원 위로 새들이 날고 있다.

정양늪은 합천읍내를 거쳐가는 여정이라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합천읍내를 거쳐가는 여정이라면 휴식하기 좋은 곳이 정양늪 생태공원이다. 읍내 남쪽 황강을 가로지르는 제2남정교를 지나 약 500m만 더 가서 왼편이다. 황강 지류의 배후 습지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다. 늪 위로 난 나무데크를 따라 아주 가까이서 가시연을 비롯한 다양한 수생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30여종의 어류, 40여종의 조류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모래주사 말똥가리 금개구리 등이 발견돼 생태적 가치도 높다. 우거진 갈대군락 아래서 쉬고 있던 물새들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오른다. 미안하면서도 신비롭다. 나무데크 외에 황토길과 흙길 등 3.2km의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다. 복잡한 일상을 탁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합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메모]

●합천은 지역이 넓은 만큼 권역에 따라 접근로도 다르다. 황매산과 영암사지, 합천호로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IC에서 산청 오부면-합천 대병면을 거치거나 산청IC에서 합천 가회면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합천읍과 정양늪 생태공원은 88올림픽고속도로 고령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남산제일봉은 해인사IC에서 가깝다. ●합천은 경남지역에선 한우로 유명하다. 가격도 서울보다는 많이 싼 편이다. 합천만의 고유 음식이라면 '국시기'가 있다. 김칫국에 찬밥을 말아 양을 불리는 전형적인 배고프던 시절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거기에 콩나물과 가래떡을 더해 맛과 모양을 보탰다. 죽과 국의 중간 정도로 걸쭉한 게 부담 없이 한끼 때울 수 있는 음식이다. 특히 밥맛이 없는 아침에 해장국 대용으로 좋다. 합천읍사무소 부근 옥천분식(055-931-6430)에서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