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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도 흔들리는 가을, 단풍에 불타는 남근석

바람아님 2014. 11. 9. 10:04
[출처 ; 데일리안 2-14-11-9일자]   

 

 

[데일리안 =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아기단풍이 붉기로 유명한 전북 순창 강천산에 가을이 무르익었다. 병풍폭포부터 구장군폭포까지 왕복 5km 구간 모랫길 산책로 일대에 병풍을 치듯 단풍이 현란하다. 강천산은 명산에 가려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은 금강산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가는 가을여행은 둘이서도 좋지만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혼자 떠나는 여행도 멋지다. 숨겨진 나만의 비밀장소를 찾은 것 같은 즐거움이 있어 더욱 소중하다.

신라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강천산은 옥같이 투명한 계곡이란 뜻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두 곳의 물줄기는 섬진강과 영산강의 발원지다. 강천산은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이다. 매표소를 지나 만나는 병풍폭포는 4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에 몸을 씻으면 죄를 지은 사람도 죄를 씻어낸다는 전설이 있다.



 

↑ 아기단풍에 둘러쌓인 남근석이 불타고 있다ⓒ최진연 기자

또한 국사가 인근의 부처형상을 한 바위를 보고 세웠다는 강천사가 있다. 고려 때 만들었다는 5층 석탑은 한쪽 모퉁이가 전쟁으로 인해 훼손된 채 남아있다. 절 주변에는 배롱나무와 은행나무, 감나무가 둘러져 있는데, 감나무에서 딴 감을 깎아 선방마루에 매달아 놓아 작은 절 경내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부처바위가 보이는 자리에는 망배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도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천사를 벗어나 1k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 평지에 아기단풍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 있다.

이곳에 높이 1m, 둘레 약 4cm의 남근석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키는 작지만 남성 형태는 다 갖췄다. 붉은 단풍은 남근석까지 불태우고 있다. 이 남근은 발기된 실제 성기와 색상도 닮았다

전설에는 하늘나라에서 선녀가 배필을 구하려고 지상에 내려왔는데,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하늘나라보다 더 큰 남성을 발견하지 못해 그만 지쳐 죽고 말았다. 그 바위가 어미바위다.

옛 부터 남근 또는 여근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부터 종족번식을 위한 제례의식이 있었다. 그 증거로는 경남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서 남자성기가 과장되게 새겨진 것이 있는데, 이것은 생산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동물을 포획하는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소박학고 단아한 작은 절집 강천사ⓒ최진연 기자

삼국시대에서는 신라인들의 성관련 유물이 많이 나온다. 섹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흙으로 만든 인형, 큰 성기, 자위행위, 출산 등의 유물이 발견돼 지금까지 수습된 것 만 40여점에 이른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지증왕이 음경이 유별히 커 짝을 구하지 못하다가 북처럼 큰 대변을 보는 여자를 왕비로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왕도 다산과 풍요를 원했다는 근거가 된다.

인간들은 능력만으로는 다산과 풍요를 얻기 힘들었다. 때문에 성기처럼 생긴 바위를 천신처럼 모시고 치성을 드렸다.

강천산 계곡에는 성을 테마로 한 공원이 최근 조성됐다. 삼척의 해신당 공원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16점의 조형물은 저마다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이 담겨져 있다. 테마공원 앞에 마주보는 구장군폭포는 강천산의 백미다. 폭포 주변의 바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근과 여근 형상이다. 이곳에 양기와 음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해 성을 테마로 한 공원이 생긴 것이다.

구장군폭포에는 옛 마한시대 때 9명의 장수가 전쟁에서 패하자 자결하러 이곳에 왔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 싸움터로 나가 대승을 거뒀다는 전설이 있으며, 또한 효성이 지극한 청년과 선녀가 거북이로 변한 애틋한 사랑얘기도 있다.

강천산 단풍은 타 지역의 단풍보다 진한 빛이 오래간다. 그리고 매표소부터 폭포까지 건강에 좋다는 맨발산행을 할 수 있는 고운모래 길도 있다. 늦가을 자연을 벗삼으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면 강천산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