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울진原電 합의·울산 맞춤 급식, '갈등 국가'에 解法 보여줬다

바람아님 2014. 11. 22. 21:04

(출처-조선일보 2014.11.22)

경북 울진에서 21일 전해진 '원전 추가 건설 합의' 뉴스와 이날 본지 보도로 주목을 받은 울산시의 '맞춤형 급식 정착' 사례가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새 모델을 보여줬다. 쟁점마다 이해집단 간의 마찰과 대립에 막혀 있는 상황에서 '울진·울산 모델'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경북 울진군은 이날 원전 6기(基)가 들어서 있는 기존 한울 원전 단지를 확장해 원전 4기를 추가 건설하는 대가로 
원전 운용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울진군에 28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수원의 지원 내용은 관동팔경 
대교(大橋) 건설, 지방상수도 확장, 체육관 건설, 자율형사립고 신설, 울진의료원 경영 등이다. 이번 협상은 1999년 
울진군이 원전 4기 추가 건설의 전제 조건으로 14개 보상(補償) 사업을 요구하면서 시작돼 무려 15년을 끌어왔다.

원전은 인구 밀도가 낮은 해안 지역에 건설한 후 거기서 생산한 전기를 송전선로를 통해 대도시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입지 지역 주민 입장에선 원전 사고의 위험과 방사능 노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므로 적절한 보상이 없으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부가 원전 입지 
확보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 
2011년 신규 원전 부지로 선정된 삼척시는 지난달 주민 찬반 투표에서 투표자 85%가 원전 유치에 반대했다.

결국 원전 입지 갈등은 정부 당국이 원전을 받아들인 지역에 충분한 보상을 해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부자(富者) 원자력 
마을'의 비전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한수원은 당초 600억원대의 지원 금액을 제시했고, 울진군은 5000억원대의 지원을 요구했다. 주민들 동의를 얻어내느라 
합의에 15년이나 걸렸지만, 다행히 정부와 한수원이 울진 주민들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울진 주민들도 모든 것을 
다 달라는 식으로 투쟁하지 않아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번 울진의 합의 덕분에 앞으로 삼척에서도 원전을 유치해 
지역 경제 재건(再建)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울산의 경우 무상 급식이 전국적인 쟁점으로 등장한 2011년부터 이미 '맞춤형 선별(選別) 급식' 제도를 도입해 지금은 정착 
단계라고 한다. 울산시에서 무상 급식을 받는 학생 수는 5만6700여명으로 전체 초·중·고교생 15만7000여명의 36% 
수준이다. 전국 평균 69%보다 훨씬 적다. 덕분에 울산시와 산하 기초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무상 급식 예산은 올해 
60억원으로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평균 예산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울산시는 당초 가구(家口)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미만인 가구의 학생에게만 무상 급식을 했다가 점차 대상을 늘려 
올해는 최저생계비의 350% 미만 가구로 확대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렇게 선별적으로 무상 급식을 하면서도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違和感)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무상 급식 학생의 부모가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주민센터가 학교에 
알려주고, 학교는 지역 교육지청에 급식비를 신청해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전혀 끼어들지 않게 돼있다. 
급식비를 내는 학생도 부모의 계좌에서 학교로 급식비가 자동 이체된다. 
학생들은 누가 돈을 내고 누가 무상으로 밥을 먹는지 알지 못한다.

울산의 맞춤 급식 모델은 여유 있는 학부모들이 일부 급식비를 부담해준 덕분에 가난한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상 급식 
혜택을 받는 방식이다. 교육청은 아낀 급식 예산으로 재정 투입이 더 급한 교육 현장에 투자할 수 있게 돼 다른 교육청들처럼 
지방정부·중앙정부와 다툴 일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가야 할 방향이 뚜렷한데도 제도를 바꿀 경우 그동안 누려 오던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의 
반발에 막혀 있다. 여야 정치권은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공무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눈치만 보고 있다.

노사 분야 역시 기업과 노조,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중첩(重疊)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해당사자 사이 빅딜 수준의 대타협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익집단 갈등을 조정할 만큼 신망을 받는 사람들도, 
중재(仲裁)를 성사시킬 수 있는 제도·절차도 갖추지 못해 헛바퀴만 돌리고 있을 뿐이다. 복지 분야 정책을 둘러싸고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교육청, 지방정부와 교육청 사이에 서로 생색은 자기가 내면서 비용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대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울진의 원전 합의와 울산의 맞춤형 급식 정착은 이런 와중에도 갈등 해소가 가능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로 끈기 있게 타협하고, 
뭐가 대다수의 이익이 될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이어가면 '갈등 대국(大國) 대한민국'의 병폐도 극복할 길이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