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박원순法' 굴러가는데 '김영란法'은 어디서 썩고 있나

바람아님 2014. 11. 26. 10:08

(출처-조선일보 2014.11.26 사설)

서울시는 24일 시(市) 산하 18개 투자·출연 기관 직원들이 입찰·채용 비리 등과 관련해 금품을 받으면 
액수와 상관없이 중(重)징계하고, 받은 돈의 최대 5배까지 징계 부과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공무원들이 단돈 1000원이라도 받을 경우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代價性)을 불문하고 징계하고 
금품·향응 액수가 100만원을 넘으면 파면·해임하는 이른바 '박원순법'을 만들어 지난 8월부터 시행했다. 
이번 조치는 박원순법을 산하 공기업·재단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부패 공무원 추방 발표 이후 서울시교육청도 국·공립학교 교사 등이 10만원 넘는 촌지를 받으면 파면·해임하고, 
100만원을 넘으면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경기도 광명시도 5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받은 공무원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파면·해임하기로 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인허가권, 예산 집행권을 쥐고 있어 그 권한이 중앙 부처 공무원들 못지않다. 
다른 지자체들도 공직 사회의 청렴도를 높이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측정하는 국가청렴도지수(CPI)가 10점 만점에 5.5점으로 세계 46위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가 세계 9위, 경제 규모가 세계 15위였던 것과는 큰 격차다. 
국가청렴도지수는 뉴질랜드·덴마크가 각각 9.1점, 핀란드 8.9점, 영국 7.6점, 미국 7.3점, 프랑스 7.1점 등 순으로, 
청렴도 순위와 선진국 순위는 거의 일치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올 초 청렴도지수가 한 단위(1.0만큼) 오르면 1인당 GDP가 2.64% 상승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정책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업 활동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국 시진핑 정권이 '호랑이(고위 부패 관료)와 파리(하위 부패 관료)를 모두 때려잡아야 한다'면서 
강력한 부패 추방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그걸 통해 경제를 도약시키자는 뜻이다.

지자체 차원의 공직 비리 대책은 내부 행동 강령이거나 규칙 수준이어서 국회가 법률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이 1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김영란법'은 작년 8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1년 반 가까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국회가 진작에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더라면 지자체들이 따로 내부 기준까지 만들어 
비리 공무원을 퇴출시키겠다고 나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국회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