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만물상] 해외 원정 문화재 도둑

바람아님 2014. 11. 27. 21:11

(출처-조선일보 2014.11.27 김태익 논설위원실)


1967년 10월 덕수궁 박물관에 전시하던 국보 119호 고구려 불상이 대낮에 사라졌다.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언론이 떠들썩하자 범인은 명동 어느 다방에 쪽지를 남겼다. 
'생활고로 잘못을 저질렀다. 곧 돌려주겠다.' 
그리고 밤중에 문화재관리국장 집에 전화를 했다. 
"한강 철교 16, 17번 다리 사이 백사장에 비닐봉지로 싸 묻었으니 찾아가라." 
문화재관리국장은 아내와 함께 지프를 몰았다. 
모래를 20㎝쯤 파니 부처님이 누워 있었다. 
부부는 밤 열두 시 다 된 시각 한강 다리 밑에서 불상을 앞에 놓고 큰절을 했다.

▶부처님도 무사히 돌아오셨고 범인도 잘못을 깨달았으니 그래도 해피엔딩이다. 
문화재 당국도 도둑도 어리숙하던 시절이다. 
중국 지안(集安)의 사라진 고구려 고분 벽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20여년 전 고분 안은 1500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 같았다. 
멋쟁이 옷 차려입고 외출하는 여인, 악기 타는 사람, 씨름하는 남자….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담은 벽화들이 
2000년 5월 전기톱에 통째로 뜯겨나갔다. 한국 고미술상(商) 사주를 받은 현지인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만물상] 해외 원정 문화재 도둑
▶얼마 뒤 인사동에는 지안에서 온 것이라며 30×30㎝ 크기 고구려 벽화 조각들이 나돌기도 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벽화들은 꼭꼭 숨었고 국내 범인도 아직 못 잡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우리 것 찾아왔으니 잘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전국 사찰과 서원, 종가(宗家)를 뒤지던 문화재 도둑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게 꽤 됐다. 
1990년 일본 고베의 수집가 집에 흉기를 들고 가 억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털었다. 
2004년엔 일본 효고현 사찰을 돌며 국보급 고려 불화들을 훔쳤다. 
이들이 내세운 범행 동기가 그럴듯했다. 
"이렇게 안 하면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찾아올 방법이 없었다."

▶쓰시마섬 절에 있는 통일신라 불상을 훔친 한국인 일당이 엊그제 일본에서 붙잡혔다. 
재작년 한국인 절도단이 고려 불상을 훔쳐온 데 이어 쓰시마에서만 두 번째다. 
'애국 범행'을 내세우든 뭘 내세우든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일제가 강점기에 약탈해 간 수만 점 문화재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절도범들의 행위는 나라 얼굴에 먹칠을 하고 문화재를 환수하려는 진지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이다. 
이들을 엄정하게 다뤄야 일본이 도둑질하고 빼앗아 간 우리 문화재를 분명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이 생긴다.